다이너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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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인류의 소망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그간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고, 과학기술의 발전 역시 전쟁에 의하여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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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발명가, 화학자, 노벨상의 창설자. 고형 폭약을 완성하여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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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 과학자와 관련된 잘 알려진 일화들의 상당수가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라는 사실은 앞서도 언급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하여, 어릴 적 위인전 등에서 많이 접했을 교훈적인 이야기들 역시 진실과는 크게 다룬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로서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노벨과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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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 전에 화약으로 많이 쓰이던 물질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이라는 무색투명한 기름 상태의 액체였다. 1847년 이탈리아의 소브레로에 의해 처음 합성된 이 물질은 폭발할 경우 순식간에 원래 부피보다 1200배 이상 늘어난 기체로 바뀌고 5000℃ 이상의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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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발명가, 화학자, 노벨상의 창설자. 고형 폭약을 완성하여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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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으로 이름을 남긴 노벨은 역설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전쟁을 근절시키고 싶어했지만 그 자신은 죽음의 상인, 더러운 상인 등의 이름으로 알려전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노벨상의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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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은 ‘힘’, ‘운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다이나미스(dinamis)가 어원이다. 다이나마이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니트로글리세린으로 화약을 만들었다. 화약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액체 물질은 충격에 아주 약해서 크고 작은 폭발 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노벨도 형제 중 한 명을 니트로글리세린 폭발로 잃었다. 그래서 니트로글리세린의 안정성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당시 액체 폭약은 양철 같은 금속통에 담은 다음 나무 상자에 포장을 했는데, 옮기는 중에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통 사이에 톱밥을 꽉 채워야 했다. 그래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충격에 약한 니트로글리세린은 운반이나 취급시에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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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2일 강행한 것으로 보이는 제3차 핵실험의 위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12일 오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근처에서 규모 4.9의 인공지진이 관측된 것과 관련, 북한이 제 3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발생한 지진의 진도는 2006년 10월 실시한 1차 핵실험과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때와 비교할 때 폭발력이 약간 상향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차와 2차 때의 진도는 각각 3.6, 4.5로 분석됐다. 국방부는 이번 인공지진을 진도 4.9로 판단하고 핵 폭발력을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