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1862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학자ㆍ발명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파도바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과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를 지냈다. 1661년에 그레고리 반사 망원경을 발견하고, 1663년에 이것을 저서 에 수록했다. 1667년에는 무한 수렴급수를 사용하여 원과 쌍곡선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적은 을 발간했다. 수렴과 발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그는, 이 연구로 수렴급수와 발산급수를 구별한 선두주자가 되었다. 1668년에 쓴 에서는 곡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면적과 회전체의 부피를 구하는 일련의 독창적인 법칙을 제시하여, 호이겐스와 논쟁하였다.

1749

프랑스의 수학자. 건축가로서도 알려져 있다. 리용에서 태어나 군대에서 건축 기사로 일하면서 건축에 흥미를 가졌고, 제대하여 파리에서 기하학을 공부했다. 1636년에 그는 기술적인 투시도법의 원리를 순수 기하학 분야에 접목시킨 을 저술하여 사영 기하학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이 분야 연구를 바탕으로 을 발표하여 원추 곡선을 사영 기하학적으로 설명하였다. 그의 사상은 파스칼에게 큰 영향을 주어 파스칼의 정리가 탄생했다고 한다. 건축 분야에서는 1640년에 을 발표하여 건축가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당시의 리용 시청사를 설계하기도 했다.

2187

  러시아의 수학자. 카잔 대학에서 공부하고, 21세기에 모교의 교수, 후에 학장이 되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로바체프스키와 헝가리의 보야이(1802∼1860)가 1820~1830년대에 걸쳐서 각각 독립적으로 생각해 내었다. 그들과 똑같은 결과를 얻었던 가우스는 당시 학계의 반대를 두려워해 발표하지 않았다. 로바체프스키 자신, 자기의 기하학을 <허기하학>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행선의 완전한 이론에 의한 기하하식 원리》(1836년)외 2권외 저서를 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출판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보급했다.

2093

  독일의 수학자. 베를린 대학,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851년 복소변수함수론의 기초에 대한 논문으로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854년의 강연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설에 대하여>는 그다지 칭찬하는 일이 없었던 가우스를 감격시켰다.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포괄하는 매우 일반적인 테두리에서 기하학을 파악한 것으로, 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준비하게 된다. 또, 리만의 푸리에급수의 수렴에 대한 논문에는 정적분의 정의가 명확하게 되어 있었다. 1859년에 디리클레의 뒤를 이어서 괴팅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론물리학에서 쓰이는 편미분방정식의연구도 했는데, 폐질환으로 일찍 죽었다.

2324

2584

1486

이탈리아의 수학자. 라벤나의 루고 출생. 1890년 이후 파도바 대학 교수를 지냇고, 지금은 텐서 해석학으로 알려진 '절대미분학'을 창시하여 그 이름이 알려졌다. 이것은 '리치의 텐서' 라고도 불린다. 그는 리만기하학을 계승하여 절대미분학을 이차 미분 형식의 불변식론과 연관지어 이 이론을 전개하였는데,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을 조사하는 데 편리하게 이용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 그의 미분학은 그다지 주의를 끌지 못했으나 뒤에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면 연구에 응용하였고, 특히 중력 방정식에 아인슈타인 텐서라고도 하는 곡률 텐서(리치텐서) 이론을 응용하므로써 이후 다른 수학분야에서도 텐서 해석학을 폭넓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의 이론은 현대의 텐서 해석학이 체계화되고 정식화되기까지 많은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