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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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에 있는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에서 금속활자를 비롯한 유물 3천 5백여 점이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남북공동 조사팀은 만월대에서 발견된 금속활자는 최고 수준의 활자라는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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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보감은 조선시대 역대왕의 업적 가운데 선정만을 모아 편찬한 편년체의 사서로 세종때에 최초로 구상되어 권제와 정인지에게 명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시기별로 각기 다른 분량으로 간행된 5종류가 있으며 순종때에는 총 90권으로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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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속활자는 1403년에 계미자를 비롯하여 경자자,갑인자,광인사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달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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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는 재료에 따라 놋쇠활자, 구리활자, 납활자, 쇠활자, 아연활자 등으로 나눌수 있는데, 금속만으로 활자를 만들어 쓰면 녹이 자주 나거나 오래 견딜수 없기에 합금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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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한 개인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려의 금속활자가 있었는데 이를 “고려복자”로 일컬어졌다. 이 활자는 모양이 균정하지 않고 네변의 길이가 약 1㎝정도이나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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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자로 조선태종연간(1403∼1418)에 간행된 것으로 6권 3책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독일의 구텐베르가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최초의 계미자(癸未字)와 비교하면 30년 정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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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자로 조선태종연간(1403∼1418)에 간행된 것으로 6권 3책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독일의 구텐베르가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최초의 계미자(癸未字)와 비교하면 30년 정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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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7년(1435년)에는 서울 남부 훈도방(薰陶坊)에 있던 주자소가 경복궁 안으로 옮겨갔다. 세조 6년(1460년)에는 교서관(校書館) 산하로 소속을 옮기고 이름도 전교서(典校署)로 바꿨다. 정조 6년(1782년)에는 교서관이 규장각(奎章閣) 산하로 들어가 또 다시 이름을 감인소(監印所)라 바꿨다. 그러다가 정조 18년(1794년)이 되어서야 태종의 예에 따라 다시 본래의 이름인 주자소로 개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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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직지를 찍은 '흥덕사자'보다 적어도 138년 이상 앞선 금속활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한 학자의 연구 내용 전해드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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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가 직지보다 1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확인된다면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큰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