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50년 50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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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쓸 만한 과학자가 없다?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고학력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매우 심했습니다. 특히 한참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에 이것은 커다란 문제였지요. 하지만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자의 귀국이 늘어났고 90년대 들어서는 더 이상 두뇌 유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네요. 무엇이 해외에 머물던 한인 과학기술인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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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래 과학 기술 개발을 위한 부처를 만들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부가 아닌 기업과 대학이 과학 기술 연구의 주요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보조하고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우리나라 과학 기술 정책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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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데는 매우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중에서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연구 장비 비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많게는 수십 억 원이나 하는 장비들을 갖춘 곳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지요. 이런 사정 때문에 과학자들이 장비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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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연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산업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응용 연구 지원이 대부분이었고, 기초 과학 연구는 197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로 끊임없이 기초과학연구를 진흥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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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으로 유명하지만, 대표 수출품은 화학과 철강 같은 중화학 공업 분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 자동차, 기계 등 중화학 공업 제품을 활발히 수출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고, 관련 기업들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중화학 공업이야말로 우리나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동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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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특허 제1호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바로 아동용 네 바퀴 자전거였다고 합니다. 흥미진진한 특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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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가 만개하는 봄이 되면 화창한 날씨와 달리 농촌의 식량 사정은 어두웠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곡식은 다 떨어지고 초여름에 거두는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살아가는 것이 험한 고개를 넘는 것처럼 어렵다고 해서 ‘보릿고개’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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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새로운 기후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1997년 교토의정서 이후 18년만의 일이었습니다. 교토의정서가 종료되는 2020년 이후에 적용될 파리기후협정은 참가국 195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파리기후협정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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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이들은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수학·과학을 공부한다”(2009년), “미국 학생들은 약 30%만 교실에서 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100% 가능하다”(2014년) 등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유독 한국의 과학 교육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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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에너지에 힘이 솟는다?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UAE 수출에 이어 스마트 원자로 판매를 위한 양해 각서 체결까지! 수주 실적 하나 없이 선진국의 기술을 수입하기만 하던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 동안 원전 선진국으로 훌쩍 발돋움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국내 연구자들의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