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50년 과학의 달

1941

전형적인 농업국이던 20세기 중반의 한국은 60여 년 사이에 선진 공업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농림어업은 전체 산업구조에서 2.5%만 차지한 데 비해, 제조업의 견인으로 광업·제조업은 세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라 서비스업의 비중도 60% 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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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만 해도 한국의 기대수명은 OECD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료 및 보건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는 선진국 중에서도 기대수명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한 나라의 보건수준을 평가하는 영아사망률 역시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분류됩니다.

1983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우수한 인재’입니다.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적은 한국은 과학기술에 투자하여 지식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곧 국제사회에서의 경쟁력입니다. 그러나 그 근간을 이루는 과학문화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1881

전쟁 후 국가 재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육, 특히 국가를 움직일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이었습니다. 해외 원조와 지원으로 틀을 잡아나가기 시작한 한국의 교육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따라 해외 교류가 점점 활발해졌습니다.

2254

한국의 도로 환경은 꾸준히 개선되어 왔습니다. 1966년만 해도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 도로였지만 2014년 기준으로 국내 도로 포장률은 92.4%에 달하여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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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과거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는 대표적인 나라였습니다. 대부분이 과학기술에 관련된 원조였지요. 이러한 원조는 나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고, 현재 한국이 원조를 하는 나라로 거듭나는 기반이 되었답니다. 원조를 받았던 과거의 역사와 원조를 주는 지금의 현황을 살펴볼까요?

1935

나라에 쓸 만한 과학자가 없다?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고학력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매우 심했습니다. 특히 한참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에 이것은 커다란 문제였지요. 하지만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자의 귀국이 늘어났고 90년대 들어서는 더 이상 두뇌 유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네요. 무엇이 해외에 머물던 한인 과학기술인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을까요?

2881

1960년대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래 과학 기술 개발을 위한 부처를 만들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부가 아닌 기업과 대학이 과학 기술 연구의 주요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보조하고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우리나라 과학 기술 정책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봅시다.

1681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데는 매우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중에서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연구 장비 비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많게는 수십 억 원이나 하는 장비들을 갖춘 곳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지요. 이런 사정 때문에 과학자들이 장비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1622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연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산업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응용 연구 지원이 대부분이었고, 기초 과학 연구는 197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로 끊임없이 기초과학연구를 진흥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