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2010-08-24
1473~1543 지동설(地動說 : 태양중심설)의 제창자로 알려진 폴란드의 천문학자. 이탈리아 유학중에 그리스의 고문헌을 통해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알게 된 후 폴란드로 돌아와 자신의 태양중심설 천문학을《요강(要綱)》 형식으로 서술해 유포시키고 있었는데, 천문학 체계로서 전개한 것은 초판 인쇄본이 그의 임종에 도착한《천구(天球)의 회전에 대하여》(1543)에서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이 저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天動說) 천문학 체계에 대치되는 본격적인 지동설 천문학 체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인쇄매체를 이용함으로써 혁명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논의에만 몰두하는 당시의 스콜라학의 학통에서 벗어나 천체관측과 궤도계산을 위주로 하는 실지천문가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지 않았다.
관측과 계산을 일치시키기 위해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점 일 뿐, 그는 우주관(宇宙觀)으로서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태양과 지구와 행성의 삼각 측량이 그의 체계를 취하면 가능해지므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서는 무의미한 값이었던 행성의 상대거리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어, 여기에서 케플러의 제3법칙, 뉴턴의 역학이 유도되었다.
그는 항성(恒星)의 세계를 무한 내지 그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가 만약 무한이라면, 거기에 중심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런 종류의 논의는 자연철학자에게 맡겨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그 발상은「닫힌」중세적(中世的) 우주관에서「열린」근대적 우주관으로의 이행을 촉발했으며, 이러한 우주관·세계관의 대변혁은 흔히「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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