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으로 포탄을 막아라?

 

철망으로 포탄을 막아라?


 

 

철망을 둘러 독일군의 성형작약탄으로부터의 방어 효과를 노린 소련의 T-34 전차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쟁 최후의 전투였던 1945년 4월의 베를린 전투. “파편을 치우는 데만 해도 20년이 걸릴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올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이 난 베를린 시가지 한가운데로 소련군의 T-34 전차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차들의 ‘본새’가 뭔가 이상했다.

 

침대 밑바닥에 까는 철망을 뜯어내 전차 표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착한 것이다. 그 기묘한 꼬락서니는 실로 캐터필러 달린 움직이는 ‘닭장’을 방불케 했다.

 

어쩌다가 베를린의 T-34는 이런 기묘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일전에 말한 성형작약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간단히 복습하자면, 성형작약탄은 역 원뿔꼴로 성형된 폭약이 장갑과 적절한 초점거리를 두고 격발될 경우, 매우 높은 관통 효과를 얻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진 대전차 탄약이다. 폭약 겉에 원뿔꼴의 구리 라이너를 씌우면 폭약의 폭발력으로 이 구리가 녹으면서 약 3,000~6,000도의 고속 금속 제트가 형성, 이것이 전차의 장갑을 두들기기 때문에 더욱 관통력이 월등해진다.

 

그리고 충분한 속도를 줘야 관통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철갑탄과는 달리, 성형작약탄은 설령 속도가 0이라도 고속으로 발사한 것에 비해 손색이 없는 관통 성능을 자랑한다. 운동에너지가 아닌, 화학에너지를 사용해 전차의 장갑을 뚫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보병이 휴대하는 대전차 수류탄의 탄두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이 대전차 수류탄은 보병이 전차에 근접 육박공격을 펼쳐야 효과를 볼 수 있어 공격자에게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이 성형작약탄을 대전차 로켓포로 발사, 원거리에서도 전차를 격파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대전 말기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연합군의 기갑 전력에 시달리던 독일은 이와 같은 발상에서, 판처 슈렉, 판처 파우스트 등의 로켓식 대전차 무기를 보병들에게 대량 보급했다. 둘 다 일단 명중하기만 하면 이론상으로는 당시 존재하던 모든 전차를 일격에 격파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이걸 들고 철저히 매복한 독일 보병들과 맞서야 하는 연합군 전차병들의 부담감은 매우 대단했다. 또한, 실제로 수많은 연합군 전차가 이들 로켓식 대전차 무기에 격파되기도 했다.

 

그런데 성형작약탄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적절한 초점거리가 맞지 않으면 관통력이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태양 빛을 확대경으로 모아 불을 붙일 때 적절한 초점거리를 맞추지 않으면 불이 붙지 않아 낭패를 보듯이, 성형작약탄도 목표 장갑과 적절한 초점거리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역 원뿔꼴로 배열된 폭약이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금속 제트를 한 점에 모아주고, 초점거리가 제일 적당할 때에 관통력이 최대화되지만, 그 이상 거리가 멀어지면 금속 제트가 모이는 게 아니라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베를린을 공략한 소련군 전차부대는 성형작약탄의 이런 약점을 알아냈다. 그래서 금속 제트의 초점거리를 뛰어넘는 훨씬 먼 거리에서 성형작약탄을 격발, 전차의 주장갑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T-34 전차 표면에 철망을 달았던 것이다.

 

물론 성형작약탄에 맞은 철망은 피해를 당하고 부서지겠지만, 전차의 주장갑이 뚫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철망은 독일인의 민가를 약탈하기만 하면 지천으로 구할 수 있다. 침대 하나 없는 유럽 가정집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침대 아래에는 매트리스를 받치는 철망이 하나씩 있으니까 말이다.

 

단, 이러한 철망식 증가 장갑은 철갑탄 등 운동에너지 탄에는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전차의 부피를 늘리고, 장비품과 간섭을 일으키는 등의 문제도 있다. 그래도 성형작약탄에는 확실한 방어 효과를 볼 수 있고, 또한 앞서 말한 대로 값이 싼데다, 무게도 가벼워 전차의 기동성을 거의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꽤 많이 애용되었다.

 

이스라엘 M-113 장갑차에 설치된 구멍 뚫린 철판형 증가 장갑

 

사실 이러한 철망식 증가 장갑은 소련군이 제일 먼저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다. 이미 독일군은 보유한 4호 전차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쉬르첸이라고 불리는 보조 장갑을 사용한 바 있었다. 원래 이 보조 장갑은 소련군의 대전차 소총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성형작약탄 방어에도 뜻밖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게다가 대전 말기 물자가 부족해지자 독일군은 4호 전차 후기형의 경우 아예 이 보조 장갑의 재질을 기존의 강철판에서 철망으로 바꾸어 버렸는데, 소련군이 이를 모방한 것이다.

 

철망, 또는 그 비슷한 형태의 ‘가벼운’ 보조 장갑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많은 전차 또는 장갑차에서 쓰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M-113 젤다 장갑차는 무수한 구멍이 뚫린 얇은 철판으로 된 보조 장갑을 쓰고 있고, 역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전차는 철망 대신 체인으로 이루어진 커튼을 이용해 전차의 약점 중 하나인 포탑과 차체 사이의 틈새를 보호하고 있다. 미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도 철망 장갑을 사용해 RPG 공격을 막고 있다.

 

미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사용된 철망형 증가 장갑

 

 

글: 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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