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에서 지상으로, 태양전지의 승리 ②] 비운의 인공위성 뱅가드 1호

미국만 스푸트니크로 엿먹은 것이 아니다. 미국 최초의 위성으로 기대를 모으던 뱅가드 1호에게도 스푸트니크가 두고두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당시 미국의 로켓 개발 계획은 해군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해군이 독자 개발하던 뱅가드 로켓에 뱅가드 1호 위성을 실어 1958년까지는 쏘아올리려는 계획이었는데, 스푸트니크로 체면을 구긴 미국이 재촉하는 통에 계획을 일 년 앞당겨야 했다.


 



미국 우주개발 초기의 주역이던 뱅가드 로켓. 그러나 초기 뱅가드는 실망스러운 실패를 거듭했다. ⓒNASA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첫 번째 발사에서 뱅가드 로켓은 고작 2초동안 땅에서 1m ‘점프하는 데 그쳤고 두 번째에서도 14초만에 폭발해버렸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은 미국에 보낸 공식 조문에서 뱅가드(Vanguard, 선봉)보다 리어가드(Rearguard, 후위)로 부르는 게 낫겠다고 비꼬아서 백악관의 심기를 긁어놓았다. 미국 언론조차 뱅가드에 플롭닉(Flopnik)’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조롱했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스푸트니크에 빗댄 자빠지니크쯤 되는, 치욕스러운 별명이다.


 


해군과 뱅가드 프로젝트는 신뢰를 잃었고 로켓개발의 중심은 육군의 베르너 폰 브라운 팀으로 넘어갔다. 브라운은 1958131, 익스플로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뱅가드 1호는 미국 최초, 어쩌면 인류 최초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두 번째 미국의 인공위성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태양전지 분야에서는 선봉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바로 최초로 태양전지를 실용화한 사례였던 것이다. (…계속)


 


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