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의 탄생
손을 사용하지 않고 쉼 없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구를 만든 인류가 가진 다음 생각은 바로 손을 대지 않고도 도구가 자동으로 일을 해 주는 것이었다. 많은 방법들을 나왔겠지만 이런 인류의 고민을 최초로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물을 끓이면 발생하는 ‘증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일정한 용기에 담긴 물을 가열하면 수증기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용기 속의 압력이 용기 바깥의 공기 압력보다 높아진다. 이렇게 생긴 압력 차를 이용하면 물체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증기기관의 기본 원리다. 증기기관은 사람의 손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고자 한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증기기관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공장의 기계를 돌리는 데나 기차와 같은 탈 것의 엔진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증기 압력을 이용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기원전 250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250년경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년 ~ 212년)는 증기 압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대포를 제작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엔지니어였던 헤론(Heron)은 물을 가열해 발생한 수증기로 회전 운동을 하는 장난감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증기 압력을 이용한 아이디어는 오래됐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용되기까지는 1,5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증기 장치의 발명과 발전
최초로 상용화된 증기기관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실린더 안에 수증기를 주입하면 피스톤이 밀려 올라간다.(용어풀이사전 중 실린더 그림 참고) 이 수증기를 다시 응축시켜 진공을 만들면 외부 대기 압력과 실린더 안의 압력에 차이가 생겨 피스톤이 아래로 내려간다. 이 과정을 통해 실린더는 상하운동을 한다. 피스톤에 양동이를 연결하면 사람이 물을 퍼 올리지 않아도 증기압력으로 인해 생기는 상하운동을 이용해 양동이로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프랑스의 엔지니어 드니 파팽(Denis Papin,1647년 ~ 1712년)은 금속 실린더에 피스톤을 장착해 증기로 인해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게 한 부분을 고안했다. 파팽이 고안한 장치는 피스톤 위로 외부에서 수증기가 유입되면 피스톤이 아래로 움직인다. 그 수증기가 빠져 나가면 피스톤 아래로 들어오는 물에 의해 피스톤이 다시 위로 올라간다. 파팽의 장치는 증기 장치이자 물을 위로 퍼 올리는 양수 장치이기도 해, 이 장치를 이용해 분당 27kg의 물을 퍼 올릴 수 있었다.
영국의 군사 기술자 토마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년 ~ 1715년)는 파팽의 증기 장치와 유사한 것을 개발했다. 세이버리는 증기 용기에 수증기를 밀어 넣고 이 증기 용기를 식혀서 진공을 만들어 압력을 낮추는 방식을 활용했다. 그가 개발한 증기 장치는 탄광에 고인 물을 퍼내는 데 쓰일 수 있어 ‘광산의 친구’로 불렸다. 하지만 이 장치로는 물을 30m 이상 퍼 올릴 수 없어 광산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림 1 파팽이 1707년에 고안한 장치를 재현한 모습.
ⓒ 위키피디아
토마스 뉴커맨(Thomas Newcomen, 1664년 ~ 1729년)이 고안한 증기 장치는 광산주들의 바람을 이뤄줬다. 대장장이이자 철 판매상이었던 뉴커맨은 광산의 양수 장치를 고안해 큰 성공을 거뒀다. 뉴커맨은 세이버리의 특허를 분석해 1705년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화력기계’로 불리기도 했던 그의 장치는 뒷날 개발된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의 선조다.
그림 2 세이버리가 1698년에 고안한 장치를 재현한 것.
ⓒ 위키피디아
세이버리와 파팽의 증기 장치는 증기 용기와 실린더가 증기압이 조절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상하운동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뉴커맨은 증기압을 조절하는 곳과 상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을 분리시켰다. 실린더와 보일러 부분이 증기압을 조절하는 곳이고 피스톤과 그 위에 막대로 연결된 상태인 물을 퍼 올리는 양동이가 상하운동이 일어나는 부분이었다.
뉴커맨의 장치는 양동이와 피스톤이 반대로 움직인다. 양동이가 아래 쪽에 위치하면 피스톤이 위쪽에 놓여 있게 된다. 수증기가 피스톤 아래에서 유입되면 피스톤이 가장 위쪽으로 올라간다. 이때 실린더 안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가 실린더가 냉각되면 실린더 안에 있던 수증기가 응축된다. 피스톤은 대기압으로 인해 아래로 움직인다. 피스톤이 아래로 움직이면 양동이는 위쪽으로 움직이면서 물을 퍼 올린다. 결과적으로 양동이를 움직인 힘은 증기가 아닌 대기압의 힘이었기 때문에 뉴커맨 장치는 ‘대기압 기계’라고 불렸다. 뉴커맨의 증기기관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증기기관으로 1770년에는 영국 전역에서 100여 대가 가동됐다.
뉴커맨의 증기기관은 탄광 안의 물을 퍼내는 데 쓰여 광산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큰 단점이 있었다. 차가운 물을 기관의 실린더 안에 뿌리면 물의 일부가 증기로 변했다. 이 증기 때문에 실린더가 진공 상태가 되기 어려웠고 따라서 피스톤이 충분히 아래로 움직이지 않았다. 즉, 물을 높이 퍼 올리는 동력이 약했다. 실린더 안에 차가운 물을 더 많이 뿌려 온도를 낮춰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이번에는 실린더가 너무 식어버렸다. 들어오는 수증기가 물로 변해 증기 압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식어버린 실린더의 온도를 높이려면 더 많은 석탄을 태워야 했다. 때문에 뉴커맨의 증기 기관은 석탄 광산 인근에서만 가동될 수밖에 없었다.
회전운동이 가능한 와트의 증기기관
뉴커맨 기관의 문제점을 해결한 사람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년 ~ 1819년)였다. 와트는 증기의 힘을 이용하는 장치들에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 증기기관을 제작하려고도 했다. 그는 뉴커맨 증기기관을 수리하다가 뉴커맨 기관의 단점을 보완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와트의 초기 아이디어는 실린더와 응축기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실린더로 들어간 수증기를 분리된 장소에서 응축시킴으로써 실린더 안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실린더는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증기기관을 작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석탄의 양을 줄여, 광산 인근이 아니어도 증기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와트는 실린더에 덮개를 씌워 피스톤이 외부 공기에 노출 되는 것을 막았다. 이렇게 제작된 와트의 증기기관은 대기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증기압만으로 피스톤을 위아래로 움직이게 됐다. 피스톤이 증기압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점에서 와트의 기관을 ‘최초의 증기기관’이라고도 한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이전의 증기기관들과 달리 상하운동이 아닌 회전운동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1782년 와트는 증기기관에서 하강운동뿐만 아니라 상승 운동에도 증기압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유성기어장치를 개발해 증기압을 이용한 회전운동도 가능하게 했다. 이 장치 덕분에 증기기관을 방직기처럼 상하ㆍ좌우ㆍ회전 운동을 모두 필요로 하는 기계들을 움직이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800년까지 와트의 증기기관은 500여 대가 제작됐는데 이 중 200여 대는 광산 등에서 사용됐고 나머지는 방앗간이나 직조 공장에서 사용됐다.
그림 3 뉴커맨의 증기기관과 와트의 증기기관 작동 원리.
와트는 응축기와 실린더를 분리해 뉴커맨 기관의 단점을 보완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 작가 김화연
증기기관이 바꾼 사람들의 일상
와트의 증기기관은 사람들의 노동방식을 바꿨다. 와트의 증기기관에 여러 대의 기계를 연결할 수 있게 되자, 기계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물건을 만드는 공장식 생산 방식이 일반화됐다. 사람들은 집에서 일하는 대신 공장에 출근해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기계에 맞추어 일을 했다.
이로써 물건을 다량으로 값싸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증기기관을 활용한 기차가 출현하면서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지역을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증기로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소박한 꿈이 1,5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좀 더 편하게 바꾼 것이다.
[교육팁]
증기기관을 직접 만들어보며 증기기관의 원리를 알아보자. 음료수 캔을 이용해 간단한 증기기관을 만들 수 있다.
준비물
따지 않은 음료수캔, 가늘고 긴 못, 유리컵, 가열기구(알코올램프, 가스레인지), 스탠드, 실
실험방법
①음료수 캔 윗부분 양쪽 편에 못으로 구멍 두 개를 뚫는다.
② 음료수를 3분의 1정도만 남기고 컵에 따른다.
③ 첫 번째 구멍에 못을 끼우고 못 끝을 오른쪽으로 틀어 구멍을 하나 더 뚫는다.
④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구멍을 이용해 또 다른 구멍을 뚫는다. (이때 네 개의 구멍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된다)
⑤ 깡통따개에 실을 연결하고 스탠드에 실을 묶어 고정시킨 후 가열한다.
실험 결과 캔 안의 증기압으로 인해 가열 도중 깡통따개가 저절로 따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교육과정]
– 초등학교 6학년, 편리한 도구
– 중학교 2학년 실과, 기계의 이해
– 고등학교 1학년 실과, 에너지와 수송 기술
용어풀이사전
– 실린더 : 내연기관·증기기관·펌프 따위에서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는 부분.
<실린더.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피스톤>
– 피스톤: 기체나 액체의 압력을 받아 실린더 속을 왕복운동하는 원판형 또는 원통형의 부품.
– 응축 : 기체가 액체로 변화하는 현상.
– 유성기어장치 : 맞물리는 한 쌍의 기어의 한쪽은 고정돼 있고 다른 쪽은 이것과 맞물리면서 그 주위를 도는 기구의 기어 전동장치.
– 방직기 : 실을 뽑아서 천을 짜 내는 기계.
글 / 박진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park0227@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