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속의 첨단공학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적 경이로움, 우리 전통 문화의 비밀을 벗긴다! 우리 문화 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치밀한 고증과 과학적 근거를 통하여 재조명한 책이다. 한민족 고유의 과학기술 유산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 속에 숨어 있는 공학적 요소를 발굴하여 그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조선 왕조의 건국 이후 우리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이루는데 기여한 인물들을 통하여 전통적인 동아시아 과학기술의 토착화를 살펴보았다.

도서명 : 전통속의 첨단공학기술
저   자 : 남문현 외
출판사 : 김영사
분   류 : 대학생, 일반인 등 번역

지은이
남문현 :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제어공학과 생체공학으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UC 버클리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하고 초빙교수를 지냈다. 1976년부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 동안 상허기념도서관장과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한국의 물시계」로 1996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과학기술처)을 받았으며, 1999년에 사단법인 한국산업기술사학회를 창립하여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역사위원, 산업자원부의 산업기술개발 및 기술기반조성사업 평가위원과 과학기술부의 국립과학관 추진위원회 전시전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손욱 :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주)삼성전관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이다. 테라급 나노소자 개발사업단 이사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포항산업과학연구원 이사,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로 위촉되었다. 1991년 대한민국과학상 석탑산업훈장(과학기술진흥 유공), 1996·1997·1998년 IR52장영실상(매일경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을 수상한 바 있다.

1. 전통 속의 공학기술
.금속공학
-청동거울 / 가야의 철제 갑옷 / 성덕대왕 신종

.시계 및 시간 측정
-자동 물시계 / 양부일귀 / 일성정시의 / 혼천시계

.건축
-포석정 / 첨성대 / 다보탑과 석가탑 / 석굴암

.도량형, 측령, 통신, 무기
-조선시대의 표준자 / 측우기 / 봉수대 / 화차와 신기전

.인쇄기술
-신라의 목판 인쇄기술 / 고려대장경 / 계미자와 갑인자

2. 기술 문화의 형성과 과정
.원나라 과학기구의 수용과 결실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 / 세종대왕 / 이천 / 장영실

.서양 중세과학기술의 조선 전래
-세계로 열린 창, 연경
-정두원과 로드리게스의 만남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교유
-천체 구조설의 조선 전래
-효종의 시헌력 반포
-실학자 홍대용
-서양기하학의 조선 전래
-장조와 화성 그리고 정약용
-박규수와 남병철의 과학기술 활동

 

 

우리 전통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공학자의 눈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유산을 공학자의 눈으로 새롭게 조명한 책이 출간되었다.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은 「한국의 물시계」의 저자 남문현 교수(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와 삼성종합기술원 손욱 원장이 공저한 「전통 속의 첨단 공학기술」이 그 책이다(김영사 발행). 우리 문화유산의 위대함을 완성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공학기술 깊이 보기를 시도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부 “전통 속의 공학기술”에서는 초등학생도 알 만한 문화유산들(포석정, 첨성대, 석굴암, 고려대장경, 해시계, 측우기, 봉수대 등)을 오늘날의 공학기술과 관련지어 분류하고(금속공학/건축/인쇄기술, 시계 및 시간 측정/도량형·측량·통신·무기), 이들이 세계 과학기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기술적 성취를 21세기 공학자의 눈으로 분석하여 문화유산을 새로운 안목으로 보게 해주는 글을 실었다. 특히 공학기술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집필되었고, 다양한 도판과 복원도를 실어 이해를 도운 점이 돋보인다.

2부 “기술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서는 조선시대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엘리트들과 이들을 적극 지원한 현군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세종대왕과 이천·장영실, 소현세자와 효종, 정조와 정약용, 홍대용, 박규수, 남병철 등 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기술 발전의 공로자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당시의 시대상과 과학기술 전래의 유기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왜 첨단 공학기술인가?
이 책은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이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과 어떻게 조우했는지, 또 우리 조상의 탁월한 성취가 당대에 어떻게 백성들의 삶에 기여했으며, 이웃 나라들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전문가 중심의 과학기술사 서적들과 구별된다. 또 미술사나 정치·왕조사 중심의 접근법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우리 전통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여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균형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책이다. 지금은 유실되어 옛문헌을 통해서나 겨우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과학 문물을 복원하여 가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당대에는 실제 어떻게 쓰였나를 유추해가는 학자들의 탐구의 과정을 담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물론 그 타당성과 진위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과학사를 탐구하는 학자들이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균형 있게 살펴보고자 하는 학생들은 물론 일반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며, 우리 나라 과학기술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안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적 경이로움의 보고
이 책에 소개된 다음과 같은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던 우리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사회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를 살다간 과학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임금들-세종, 효종, 정조……-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 소개

“기원전 4, 5세기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지름이 21cm밖에 안 되는 원판에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그렇게 많은 가는 선들을 촘촘히 돋을새김(양각)하는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사람이 아는 ‘신의 솜씨’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우선, 컴퍼스를 사용하지 않고 100개가 넘는 동심원을 그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 정교한 자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정교한 직선을 그을 수 없다. 이 직선과 원들이 이루는 기하학적 배열은 현대의 컴퓨터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니 제도 기술의 우수함에 혀를 찰 따름이다.”
– 1부 금속공학 “청동거울” 편에서(14∼16p 참조)

“지금 남아 있는 금영 측우기(錦營測雨器, 충청 감영을 금영이라 부름)는 헌종 3년(1837년)에 만든 것이며, 구조는 하단의 원통(밑부분)과 2개의 실린더가 각각 분리되게 하여 3단으로 만들었다. 이는 측정시의 정밀성과 취급시의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며, 온도 변화 등에도 변형이 잘 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그 부수적인 목적이 있었다. 세종대의 것도 같은 모양이었을 것이다. 측우기의 지름 144.5mm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크기로, 현재 세계 각국이 택하고 있는 평균적인 크기와 일치한다. 빗물을 받는 윗면이 너무 넓으면 비의 양이 적을 때 측정 오차가 커지고, 반대로 너무 좁으면 바람이 불 때 빗물을 그릇 안으로 받는 데 부적합하다. 그러니까 세종의 측우기는 아주 적당한 크기였음을 알 수 있다.”
– 1부 시계 및 시간 측정 중 “측우기” 편에서(100∼105p 참조)

“숙종 34년(1708년) 관상감에서는 아담 샬이 제작한 적도남북양총성도(赤道南北兩總星圖)를 6폭 병풍에 모사하여 진상하였다. 이를 받아 본 숙종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즉석에서 읊었다. …… 한시(漢詩)라면 뛰어난 풍경이나 예술품을 본다던가 사람과의 만남이나 이별에 즈음하여 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숙종의 어제시문 가운데는 외래 문물인 천문도, 자명종, 물시계, 선기옥형(혼천의) 등을 두고 지은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천문도나 혼천의를 두고 시를 짓는다는 것은 소위 임금이 ‘관상수시(觀象授時)’라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요임금의 천도정치 사상을 본받아 유교의 정치 이념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굳은 의지를 백성들에게 확실히 천명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행위이다. 임금이라 하여 모두 이러한 시를 지은 것은 아니다. 관상수시라면 조선시대 첫째로 꼽을 세종대왕도 이런 류의 시문보다는 <간의대기(簡儀臺記> 곳곳에 관상수시의 중요성에 입각하여 몇 편의 기문을 기초하면서 소회를 남겼을 뿐이다. 영조는 십여 편의 의상시문을 남겼는데 부자간인 숙종, 영조는 관상수시와 요순시대의 복고에 남달리 힘쓴 임금들이다.
– 2부 서양 중세과학기술의 조선 전래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교유” 편에서(148∼152p 참조)

“홍대용의 위대함은 이러한 경력이나 저술보다는 서양 과학이 동양 과학보다 앞선 것은 ‘서양 과학의 본질이 실험 기구와 수학을 통한 검증’에 있음을 꿰뚫어 본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데 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나경적(羅景績) 등과 여러 가지 천문의기를 제작하여 그의 향리에 농수각(籠水閣)이라 이름 붙인 천문관에 설치하고 과학 탐구에서 실험 기구가 갖는 중요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서양 과학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다.”
-2부 기술 문화의 형성과 발전 “실학자 홍대용” 편에서(165∼181p 참조)


※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