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루 – 자동 물시계


 



 


 


 


 


 


시계가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 아마도 낮에는 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간을 추측했을 것이고, 밤에는 달이나 별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 해와 별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은 날씨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날씨가 흐리거나 여름같은 장마철의 경우에는 해와 별이나 달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물이 계속 흐르면서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을 항상 알려줄 수 있는 물시계와 같은 국가 표준 시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격루가 탄생하게 된 이유



세종대왕 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수압을 조절하는 3단의 수위 조절용 항아리, 낮과 밤을 번갈아 이용하는 두 개의 물받이 통 그리고 종과 북, 징과 같은 자동 시보장치를 갖춘 물시계로서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진일보한 것이었다. 자격루가 발명되기 전, 세종대왕은 장영실로 하여금 경점지기(更點之器)라는 물시계를 만들게 하였다. 그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항아리를 층층이 놓은 다음, 맨 위쪽에 위치한 항아리에 물을 채워 아래쪽의 항아리에 차례로 흐르도록 한 것이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아래에 있는 항아리에 일정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하여 그 안에 눈금을 매긴 잣대(자의 종류)를 띄워 놓는다. 그러면 항아리 안의 물이 늘어나는 대로 잣대가 떠오르는데, 이 잣대의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물시계는 밤낮으로 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잣대의 눈금을 읽어야 했으므로 매우 불편하였다. 이를 안 세종대왕은 “사람이 눈금을 일일이 읽지 않고도 때가 되면 저절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라.”고 다시 지시하였고, 세종 16년(1434년) 장영실은 ‘자동 시보장치’가 달린 물시계인 ‘자격루’를 완성하였다.


 


자격루 이전에도 물시계는 많았다. 물시계는 유입식과 흡입식이 있는데 유입식은 물이 흘러가는 양으로 시간을 아는 것이고, 흡입식은 물이 흘러들어오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된다. 자격루는 이러한 흡입식과 유입식 기술이 모두 사용되었고 여기에다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렇게 정확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궁궐에서 호위병들이 업무교대를 하거나 성문을 여닫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성문을 여닫는 시간이 들쭉날쭉하면 일상생활의 혼란을 주는 것은 물론 임금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또 하나 자격루 탄생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전쟁 때문이다. 전쟁할 때 여러 부대가 연합하여 작전하려면 제시간에 군대를 정확하게 이동시켜야 했다. 그래서 세종대왕 때 시계를 만들어 가장 먼저 보낸 곳이 군사적으로 위협이 상존하는 국경 변방이었다. 이와 같은 국가적 필요로 인해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 활용하였으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자격루의 작동 원리



그렇다면 자격루는 어떻게 자동으로 시간을 알렸을까? 세종실록 65권 [보루각기]편에 적힌 자격루의 원리를 살펴보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있는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에 있는 쇠알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 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알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 징, 북을 울린다.’라고 적혀있다. 자격루는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물 항아리 부분), 물시계로 측정한 시간을 종, 북, 징소리로 바꿔주는 시보장치(종,북,징을 치는 인형 부분), 물시계와 시보장치를 연결해주는 방목(方木)이라는 신호발생장치(2개의 네모기둥/잣대)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이유



위 그림에서 보는 물 항아리를 ‘파수호’라고 한다. 자격루는 물 항아리의 크기에 따라 대파수호와 중파수호, 소파수호로 구분된다. 이 세 곳의 파수호를 거쳐서 나온 물이 수수호(긴 원통형으로 생긴 2개의 물받이통)에 일정하게 채워지면서 수수호에 있는 잣대가 위로 떠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바로 부력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 잣대에는 길이는 잣대만큼, 폭이 2촌(약 6cm)인 구리판을 넣게 되는데 이 구리판에 12개의 구멍을 뚫어 작은 구리 구슬 12개가 들어가게 하였고 이 모든 구멍은 열고 닫을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자격루가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수수호에 일정하게 물이 채워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정하게 물을 흐르게 하는 핵심 역할은 바로 소파수호이다. 대파수호에서 물이 직접 수수호로 들어가게 되면 통에 채워지는 물의 높이가 일정하게 변하지 않는다. 이는 수압이 물의 높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파수호와 수수호 사이에 소파수호를 둠으로써 소파수호에 늘 물이 가득 차게 하여 물의 높이를 일정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수호에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자동 시보장치의 비밀 – 뻐꾸기시계의 알람 소리












파수호에서 떨어진 물이 수수호로 흘러들어 가면서 수수호에 꽂힌 잣대가 점점 올라가게 되는데 잣대가 어느 정도 높이게 이르게 되면 잣대 안에 있는 구리판 구멍의 여닫이 기구가 뒤로 젖혀지게 된다. 그 구멍으로 잣대의 작은 구슬이 자동 시보장치와 연결된 구리통으로 굴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구리통으로 굴러 들어온 작은 구슬이 밑으로 떨어지면 그 아래에 있던 숟가락 받침 모양의 기구가 이 구슬을 받게 된다. 즉 작은 구슬이 숟가락에 떨어지면 그 구슬이 떨어질 때의 에너지 때문에 숟가락 손잡이 부분이 뒤로 젖혀지게 되고 차례로 큰 구슬이 굴러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큰 구슬은 2층에 세워져 있는 3개의 인형의 팔뚝을 건드리게 되고 자동적으로 3개의 인형의 팔이 움직이면서 종, 북, 징을 치게 된다. 쉽게 말해 우리 주변에 있는 뻐꾸기시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종 연산장치들을 갖춘 디지털시계



엄밀히 말해 자격루는 물시계에서 측정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켜주는 변환기, 그리고 십이시(十二時 / 낮 시간을 12시간으로 구분하여 알려주는 시간 계산법)와 경점법(庚點法 / 하룻밤을 5경으로 나누고 매 경을 다시 5점으로 나누던 고대의 시간 계산법: 해가 진 후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동이 틀 무렵까지 적용)에 맞추어 고안된 각종 연산장치들을 갖춘 디지털시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보장치에는 시, 경, 점을 담당하는 3개의 시보인형이 각각 종, 북, 징을 칠 수 있는 기구를 들고 있다. 인형 가운데 하나가 종을 울리면 곧바로 시보장치 안에 있는 십이지신(十二支神) 가운데 그 시에 해당하는 동물 인형이 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나온다. 예를 들면 자시(子時)에는 자시를 상징하는 쥐가 ‘자’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와 지금 울린 종소리가 ‘자시’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머지 2개의 인형은 밤 시간에만 경점의 숫자대로 북과 징을 울려주었는데, 즉 1경 1점에서 북과 징을 울리기 시작하여 5경 5점까지만 작동했다. 예를 들어 1경 3점이 되면 북을 1회, 징을 3회 울려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15세기 공학기술의 백미 – 자격루



자격루 작동 원리의 핵심은 물의 흐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여 이 힘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즉 물의 낙차를 이용해 생긴 부력으로 구슬이 움직이면서 계속적으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 시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뛰어난 디지털 기능을 갖춘 자격루에도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 잣대에서 떨어진 구슬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일, 그리고 물을 갈아주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해야 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격루는 15세기 초 제어계측 기술의 백미이며, 우리나라 공학기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명품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손성근 / 국립과천과학관 전시기획총괄과 연구사

자료제공 국립과천과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