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라부아지에 [Antoine Laurent Lavoisier,1743.8.26~1794.5.8]

18세기 프랑스의 화학자로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아버지의 권유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법학사가 되었으나, 자연과학을 매우 좋아하여 그 공부에 열중하였다. 20세 때에는 이전부터 가정적으로 친교가 있던 지질학자 게타르(J.E. Guettard)의 영향을 받아 광물 표본을 수집하고, 화학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764~65년 최초의 화학 연구로 석고의 분석을 했을 때 이미 정량적(定量的) 방법이 사용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67년에는 게타르와 함께 광물지질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여행을 했고, 그 후 10년 동안 이 지도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게타르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 화학이나 지질학 등을 실지로 연구하게 되었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전문적인 과학자가 되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실시한 도시 조명용 램프의 개량에 대한 현상 논문 모집에 응모하여 1등상을 받기도 하고, 게타르를 도우면서 훌륭한 연구를 했으므로, 라부아지에의 이름은 프랑스 학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리하여 26세 때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에 뽑히었다.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는 1666년 루이 14세(Louis XⅣ)의 후원으로 세워졌으며, 학문상 공적이 있는 학자들의 모임으로서 여러 가지 학문상의 연구를 하거나 정부의 의뢰에 따른 조사를 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었다. 이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아주 명예로운 일이었다.

● 물의 연구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된 뒤부터 라부아지에의 과학자로서의 활동은 눈부신 것이었다. 우선 첫째로 물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우물물을 증발 접시에 담아 불 위에 올려놓고 바짝 마를 때까지 증발시키면, 소량의 흰 찌꺼기가 남는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실험이다. 그때까지의 학자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물을 증발시킨 뒤 남는 흰 찌꺼기는 흙이다. 그것은 물에 불이 가해진 결과, 물이 흙으로 변화하여 된 것이다.” 그 무렵에는 물, 흙, 불, 공기 등의 정체를 아직 몰랐었기 때문에, 이것들은 예로부터의 생각에 좇아서 원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이제 말한 현상은 물이라는 원소에 불이라는 원소가 가해져서 흙이라는 원소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이와 같이 자연 현상을 말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납득하지 않았다. 자연계의 진리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관계되는 사실을 남김없이 조사해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마개를 잘 해놓은 유리그릇 안에 증류수를 넣어 불에 올려놓고 101일 동안이나 가열해 보았다. 그랬더니 물은 부옇게 흐려져서 찌꺼기 같은 것이 떠 있었다. 그래서 가열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흰 찌꺼기를 걸러서 물과 따로 떼어 놓은 뒤 말려서 무게를 달아 놓았다. 한편, 물은 접시에 넣어서 바싹 마를 때까지 끓인 다음, 이 때 또 새로 나온 찌꺼기의 무게도 달았다. 그리고 나서 마개를 한 그릇을 잘 말려서 무게를 달아 보았더니, 유리그릇은 얼마쯤 무게가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흰 찌꺼기의 무게와 찌꺼기를 걸러낸 물을 증발시켜 생긴 찌꺼기의 무게를 더해 보았더니, 그 무게가 유리그릇의 무게의 줄어든 양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라부아지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물은 불에 가열되어 흙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학자들이 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실은 유리가 물에 녹은 것이다. 왜냐 하면 유리그릇의 줄어든 무게와 흰 찌꺼기의 무게가 꼭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연구였다. 물이나 흙과 같이 가장 흔한 물질에 대하여 오랜 동안 전해 내려온 잘못된 생각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입각해서 뒤엎어 놓았기 때문이다. 화학은 물질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항상 물질을 직접 다루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물질에는 모두 무게가 있으므로, 물질의 변화를 다룰 때는 무게의 관계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라부아지에는 이와 같은 화학 연구의 근본적인 방법을 뚜렷이 인식하였고, 더구나 이를 훌륭히 실행했던 것이다.

● 연소의 연구

라부아지에의 업적은 연소의 이론을 발견했다는 것. 공기 중에서 물질을 가열하면 불꽃을 내며 타서 재가 된다. 납과 같은 금속도 가열하면 재가 되고 만다. 공기 중에서 물질이 열을 받아서 변화하는 현상은 자연계의 화학 현상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것. 라부아지에 이전의 화학자는 물질이 타거나 재가 되는 것은, 이들 물질 속에 불타는 근원이 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이것을 플로지스톤[연소]이라 한다), 그리고 물질을 가열하면 플로지스톤이 도망친다고 생각하였다. 이 플로지스톤은 상상의 물질이었다. 플로지스톤을 확실히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소에 참가하는 여러 가지 물질을 빠짐없이 올바르게 파악하며, 그리고 이들 물질의 무게를 달아서 분량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일(이것은 라부아지에가 물의 연구에서 실행한 방법이다)을 실행하여, 귀중한 연소의 이론을 명백히 한 것은 라부아지에였다. 그는 물질이 화학 변화를 일으키기 전과 일으킨 후에도 전체의 무게(곧 질량)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많은 실험으로써 확인하였다. 이 결론이 질량 불변의 법칙이다.

이 연구의 완성을 위하여 라부아지에는 오랜 세월을 열심히 노력하였다. 처음 연소에서는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물질이 불타는 물질과 결합되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 때마침 영국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라는 화학자가 산소 가스를 발견하였다. 라부아지에는 이 신발견의 가스야말로 연소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수은을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붉은 재가 된다. 오래된 생각에 따르면, 이것은 수은이라는 금속에 포함된 플로지스톤이 열 때문에 쫓겨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에서 말하면, 금속의 재 = 금속 – 플로지스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프리스틀리가 이 붉은 재를 더 가열한 즉, 가스가 나오고 나중에는 본래의 수은이 남았으며 그 가스 속에서는 물질이 매우 잘 탔고, 이것을 마셔보았더니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라부아지에는 수은을 플라스크 안에 넣고 밀봉하여 밖으로부터 공기가 들어오지 않게 해놓고, 플라스크를 오랫동안 강하게 가열해 보았다. 플라스크 안의 공기의 체적은 미리 잘 재어 두었다. 수은을 가열하는 동안에 붉은 재가 생겼다. 그리고 플라스크 안의 공기의 체적은 1/5쯤 줄어 있었다. 플라스크 안에 남은 공기 속에 작은 동물을 넣어 보았더니 곧 죽어 버렸고, 촛불을 넣어 보았더니 금방 꺼졌다. 다시 말해서 남은 공기는 물질의 연소나 동물의 호흡을 지탱할 힘이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붉은 재를 모아 무게를 잘 달고 앞서와 같이 플라스크에 넣고 밀봉하여 가열해 보니, 프리스틀리가 실험한 대로 수은과 가스가 생겼다. 그 가스의 분량은 앞의 실험에서 줄어든 공기의 체적, 곧 수은이 재가 될 때에 빨아들인 체적과 거의 같았다. 여기서 생긴 수은의 무게는 재의 무게보다 적어져 있었으며, 수은의 무게와 새로 생긴 공기의 무게를 더해 보니 재의 무게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발생한 가스는 동물의 호흡이나 촛불의 연소를 잘 지탱시켜 주는 힘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스(나중에 라부아지에는 산소라고 이름 붙였다)와 앞의 실험에서 남은, 불을 끄던 가스를 혼합시켰더니 진짜 공기와 똑같은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실험에서 잘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은이 재가 된 것은 수은과 공기 중의 산소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를 가열하면 본래의 산소가 나오는 것이지 결코 플로지스톤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즉, 금속의 재 = 금속 + 산소인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수은과 같은 금속뿐만 아니라, 유황이라든가 인 같은 여러 가지 물질에 대하여 연구해 보았다. 어떤 경우에도 물질이 타거나 금속이 재가 되는 것은 플로지스톤이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공기 중의 산소가 물질과 화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의 호흡에 대해서도 들어가고 나오는 가스의 무게를 달거나 성질을 조사함으로써, 산소가 몸 안에서 타서 이산화탄소(탄산가스)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밝혔으며, 그 밖의 생리적인 현상도 화학적인 설명을 부여할 수 있었다. 또 그때까지의 학설에 의하면, 금속은 원소가 아니고, 재가 원소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재가 금속과 산소가 화합한 것임은 실험에 의해 증명되기 때문에 원소가 아니고 반대로 금속은 더 다른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므로, 다시 말하여 그 이상 나눌 수가 없기 때문에 금속 쪽이 원소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원소란 더 이상 다른 물질로 나누어지지 않는 최후의 물질이라는 생각은 라부아지에 이전부터 있었으나, 최후인지 아닌지는 화학자가 실험을 해본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과학자가 실험하여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학문의 원칙을 뚜렷이 세운 사람 가운데의 하나이다. 라부아지에는 유황, 인, 탄소 등이 산소와 화합하며 황산, 인산, 탄산 등의 산이 되므로, 모든 산의 근원이 산소라고 생각하였다. 산소라는 이름은 거기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되어 있었으므로 나중에 가서 다른 학자가 바로잡았다. 라부아지에가 산소의 역할을 발견하고, 연소라는 귀중한 현상을 밝혔으며, 원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을 뿐더러 화학 연구 방법을 근본부터 학문다운 것으로 만든 덕분에 화학은 완전히 그 면목을 새롭게 하였던 것이다.

1987년 기통 드모르보를 중심으로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반(反)플로지스톤파에 의해 《화학적 명명법(命名法)》이 출판되어, 원소(元素)의 정의와 함께 수소·질소 등의 명칭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그 원소 속에는 빛과 칼로릭(열소〈熱素〉)이 포함 되어 있으며, 라부아지에에 따르면 산소 가스란 산소 원소와 칼로릭이 결합한 것이었다. 1989년 이러한 신명명법 및 새로운 기제화학에 입각, 입문서로서 《화학요론(要論)》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질량보존(質量保存)의 원리가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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