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의외로 느껴지겠지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목회자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워낙 진화학자들과 종교계의 사이가 험악하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시 영국으로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당시 영국에서는 ‘자연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연구하여 신의 뜻을 드러내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젊은 시절의 다윈. 그는 비글호에 탑승할 때만 해도 그는 진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출항시부터 선물받은 라이엘의 저서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비글호에 탑승한 계기도 특별한 연구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지식인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피츠로이 선장의 요청에 응한 것에 가까웠다. 피츠로이는 다윈에게 항해 중 읽으라고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선물했는데, 이 책이 다윈이 진화론을 생각해내는 단서를 제공했다.
비글 호의 항해를 그린 콘라드 마틴스의 그림
이는 어찌 보면 역설적이었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는 근대 지질학을 확립한 책으로 ‘동일과정설’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동일과정설이란 지질학적 변화는 매우 완만하여 현재 진행중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변화가 일어났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즉, 현재 산이 갑자기 생기거나 바다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엄청난 비가 와서 모든 들판이 잠기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과거해도 그러했으리라고 가정하고 지질학을 연구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였는데, 지질학에 일관된 원칙을 제공함으로써 지질학이 객관적인 과학으로 체계화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지질시대의 길이를 비약적으로 늘려 놓아 다윈이 진화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인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다만 동일과정설은 변화보다 일관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보니 라이엘 자신은 종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생물 종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 자연의 안정성을 해치는 현상에 가까웠다.
찰스 라이엘의 책, 지질학 원리의 삽화. 이 책에서 강조한 동일과정설은 다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렇다면 다윈은 어째서 라이엘의 생각과는 달리 종의 변화를 고려하게 된 것일까? 그 단서는 다윈의 철학적, 사상적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윈에게 많은 영향을 준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당대의 명사였다. 그는 아마추어 과학자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당시 기준에서 자유주의자에 해당하기도 했다. 찰스 다윈은 그러한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이라면 으레 색안경을 끼고 보기 마련인 유색인종들에게 딱히 편견을 갖지 않았다. 비글호에는 세 명의 파타고니아 원주민이 탑승했는데, 이들은 비글호의 첫 번째 항해에서 사로잡혔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이번 항해에는 선교사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다윈이 느낀 것은 문명과 미개함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문화와 사회의 차이지 인종의 차이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시의 다윈에게 파타고니아 원주민들은 여전히 미개하고 거칠어 보였지만 항해 동료인 파타고니아 출신 선교사들은 함께 지내기 유쾌하고 교양있는 사람들이었다.
파타고니아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물들에 대한 관점에도 반영되었다. 다른 학자들과 달리 다윈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은 없다고 생각했다. 동물들 사이에도 원래부터 존재했던 칸막이 따위는 없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김세경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