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연구실] 생명은 기계와 같다, 윌리엄 하비

중세시대까지 유럽의 의사들은 로마 시대의 의학자, 갈레노스가 세운 의학체계를 배웠다. 갈레노스는 몸의 작용을 소화, 호흡, 신경의 3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정맥, 동맥, 신경은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았고, 서로 전혀 다른 체계를 구성하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윌리엄 하비의 초상화. 하비는 갈레노스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연구는 뉴턴의 과학혁명 만큼이나 강한 파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상과는 어딘가 특별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던 ‘생명’에 대해서 정량적인 방법론을 도입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갈레노스는 심장의 활동을 자세히 설명했다. 심장 안에서는 우심실에 들어온 피가 심실 사이의 격막을 통해 좌심실로 옮겨간다. 심장의 주된 운동은 심장이 팽창하면서 밖에서 피를 끌어들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갈레노스의 이런 설명에 반기를 든 것은 다양한 해부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 16세기의 학자들이었다. 그 중 결정타를 준 인물이 바로 영국의 윌리엄 하비다.


 


하비는 오랫동안 다양한 동물을 해부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의 관찰결과를 비교하면서 심장과 동맥의 운동과 기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었다. 하비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장이 이완할 때 크기가 가장 크고 이때 가슴을 쳐서 박동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심장을 손에 놓고 만져보면 심장이 수축할 때 더 딱딱한데 이는 근육이 긴장해서다. 그리고 심장이 움직이면 창백한 빛깔을 띠고 정지하면 선홍색으로 바뀐다.


 



하비가 피의 순환에 대한 이론을 밝힌 책, ‘동물의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


 


이로부터 하비는 심장이 수축할 때 벽이 두꺼워지고 심실은 작아져 피가 방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갈레노스의 이론과 달리 심장이 주로 하는 일은 피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수축하면서 피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었다.


 


하비는 자신의 주장을 정량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실제로 피의 양을 계산했다. 하비가 측정해보니 맥박이 한번 뛸 때마다 56.6g의 피가 방출됐다. 1분 동안 맥박 수를 72로 잡으면 약 240kg의 피가 1시간 만에 방출된다. 이렇게 많은 양의 피가 만들어졌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피가 순환한다고 가정해야 아귀가 맞는다. 하비는 해부를 통해 대정맥을 묶거나 누르면 심장 아래로는 혈관이 막혀 손가락과 심장 사이의 피가 빠져나가 텅 비어버리는 현상을 관찰했다.


 


또 동맥을 묶으면 동맥과 심장 사이에 피가 가득 차서 혈관 색깔이 진해지고 터져버릴 듯 팽창하는 현상도 관찰했다. 하비는 이런 실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이 바로 그 유명한 끈으로 팔뚝을 묶는 실험이다. 우선 하비는 마르고 정맥이 굵은 사람을 골랐다. 그 중에서도 운동한 뒤 몸의 말단으로 가는 피가 많고 맥박이 강한 사람을 다시 추렸다.


 



하비는 자신이 행한 실험을 방법 및 결과와 함께 책에 실어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비의 유명한 ‘팔뚝 실험’ 삽화


 


그런 다음 이렇게 선택된 사람의 팔뚝을 끈으로 묶었는데, 이 때 가능한 세게 묶으면 묶은 부위 아래에는 어느 곳에서도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묶은 부위 위쪽 동맥은 심장이 팽창했을 때도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이 보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피의 공급이 중단된 손은 차갑게 식었다. 묶은 끈을 약간 느슨하게 조절하면 정맥이 부풀어 오르고 묶은 부위 아래의 동맥은 위축됐다. 묶은 부위 위쪽으로 정맥을 따라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관찰되는 이유는 정맥은 피부에 가깝게 있고 동맥은 피부에서 멀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비는 아직 모세혈관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완전한 피의 순환을 설명해내지는 못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정량적인 방법을 동원한 실험으로 생명현상을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뉴턴에 버금가는, 생리학 분야에서의 결정적인 도약이었다.


 


 


주일우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