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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필요한 요소들

성은현 교수|호서대학교 인문대학 유아교육과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언젠가 물리학자, 공학자, 건축가, 조각가, 무형문화재, 음악가, 교육학자 등 각 영역별로 창의적인 인물을 한 분씩 선정하여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하러갔을 때 한두 분을 제외하고는 공통적으로 ‘자신이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 분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아주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또는 “전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획기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창의성을 “새롭고 유용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새롭고 유용한 것’의 수준은 다양할 수 있다. 창의성에 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한 Kaufman은 이러한 수준을 Big C, Pro C, Little C, Mini C로 구분한다. Big C란 모차르트, 피카소, 아인슈타인처럼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역사적으로 천재 수준의 창의성을 일컫는다. 이들의 업적은 수백 년이 지나도 기억되고 사랑받는다. Pro C란 교수들, 전문가들 수준의 창의성으로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수준 높은 창의적 업적을 만들어 내지만 Big C만큼 세상에 파장을 미치지는 못한다. Little C란 일상생활 속에서 일반인들에게 관심 있는 창의성이다. 음식을 하다 재료가 부족할 때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 중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생각해 내거나, 음악 편곡을 하거나,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을 Little C라고 한다. Mini C란 개인이 각자 자기가 생각하기에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으로 창의성의 첫 수준이다. Mini C는 부모나 교사에 의해 격려되어 Little C가 되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Pro C가 되고 후에 이중 몇 사람은 Big C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수준에 해당하건 창의적인 사람이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은 Little C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세상의 진보에 조력하는 Pro C와 획기적인 업적을 내는 Big C를 가진 사람들이 미래사회를 주도할 것이다.

필요는 창의성의 어머니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세욱 옮김, 2003, 『나무』, 주식회사 열린책들)에서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재미난 세상이 소개된다.

‘일어나라고 사람 말을 하며 기상시간을 알리는 자명종 시계…조금 더 자려고 뒤척이면 자명종은 이내 덜 상냥한 목소리로 잠을 깨운다. 마지못해 일어나 실내화를 신으면 실내화는 “앞으로” 라고 외치며 주방을 향한다. 주방문을 열면 주방기구들이 주인공을 향해 상냥한 인사를 한다. 의자는 자동으로 사람이 앉기에 적절한 공간만큼 떨어지며 엄마처럼 ‘아침을 잘 먹으면 힘이 날 것’이라고 격려 한다. 요리도 세탁도 모두 기계가 완벽하게 처리하는 세상, 소형 스피커와 음성 합성기를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가전제품이 상용화되는 세상… ’
베르나르의 소설에 나오는 상상속의 세상은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낸 참 편리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편리한가, 아름다운가, 성능이 우수한가, 안전한가, 경제적인 이익이 있는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치 기준을 설정하고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개발한다. 그 결과 창의적인 산물이 만들어지고 상상 속의 편리함은 현실이 되곤 한다. 즉 필요에 의하여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더 편리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성능 좋고, 더 안전하고, 더 경제적인 창의적 산물이 만들어진다.

창의성과 지능은 비례하는가?

창의적인 활동을 위하여 뛰어난 지능이 필요할까? 사람들은 지능의 개념이 지능을 연구하는 학자의 수만큼 많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추론능력을, 어떤 학자는 학습능력을, 어떤 학자는 적응력을, 어떤 학자는 문제해결력을 지능이라고 한다.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창의성과 지능간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지능을 학습능력이라고 가정한다면 창의성과 지능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개념일 수 있으나, 지능을 문제해결력으로 정의한다면 지능과 창의성은 같은 개념일 수도 있다. 즉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지능이 높은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이전에 경험한 것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를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유용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인 동시에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관계는 독립적인 관계도 아니고 같은 개념으로 합일하는 관계도 아닌 상호 중첩적 관계이다. 상호 중첩적 관계를 식역치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창의성과 지능은 지능지수가 120 또는 130일 때까지는 서로 비례하지만 그 이상이면 상호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지능이 120 또는 130일 될 때까지는, 지능이 높은 사람이 창의성도 높고, 반대로 창의성이 높은 사람이 지능도 높지만, 그 수준 이상이 되면 지능이 높은 사람이 반드시 창의성이 높은 것은 아니고 창의성이 높은 사람이 반드시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능의 평균을 100으로 볼 때 120 또는 130이라는 지능지수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높은 점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Big C, 또는 일부 Pro C의 창의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면 생활에서 필요한 창의성(Little C)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창의성의 필요조건

창의성과 지식의 관계는 어떠할까? 우리는 많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문제해결 방식이 늘 비슷한 틀에 박힌 방식임을 종종 경험한다. 그렇다면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창의적이지 않은가?’ 물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다윈이나,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매우 많았다.

“아웃라이어”란 책을 보면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까지는 ‘만(10,000)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10,000) 시간’이 어떻게 나온 것인가? 필자가 계산해 보니 매일 두세 시간 동안 10년 간 계속 노력하면 ‘만 시간’이 나온다. 즉 자신의 분야에 대해 ‘만 시간’을 할애하여 지식을 쌓아갈 때 그 분야에서 창의적인 업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의성이 공부를 안 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 학생들의 탈출구’가 될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즉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익히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인내와 끊임없는 노력은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높은 물리학자, 공학자, 건축가, 조각가, 무형문화재, 음악가, 교육학자를 인터뷰하며 “당신이 창의적인 업적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하였다. 건축가는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강조했고, 과학자는 “문제발견과 논리적 사고”를 강조했다. 이렇게 영역별로 다소 다른 대답이 나왔지만 희한하게도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동일한 대답을 하는 것이 있었다.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괜찮지 않아서 며칠간 밤샘작업을 하게 된다”는 인내와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20세기의 대표적 서양화가이자 조각가이며 큐비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카소는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을 비롯한 약 3만점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재능도 있었지만 그가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 작품을 위해 그렸던 습작들로 창고가 가득 찰 정도의 노력파였다고 한다.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피카소의 작품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독자성, 개방성, 호기심, 위험 감수, 도전 등의 성격특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과 문화

아이들이 미국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어느 날 큰 애가 와서 “엄마 내일은 ‘헤어 데이(hair day)’인데…”라고 했다. ‘헤어 데이’니 머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그 다음 날 아이들을 데리러 간 나는 다른 아이들의 머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무지개 색으로 하고 온 아이, 반만 웨이브를 하고 온 아이… 그 후에도 학교에서 한 달에 한번 씩 아이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날이 있었다. 창의성에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의 표현이라고 할 때 이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문화는 창의성에 매우 우호적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문화는 어떠한가? 몇 년 전 대학생들에게 ‘한국적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질문했었다. “전통의 재해석”, “독창성”, “인내와 노력” 등의 대답이 순서대로 나왔는데 뜬금없이 “억압”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사회구조와 교육이 창의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창의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치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창의성을 이야기해서 뭐 하겠냐’는 듯 ‘창의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한 학생들의 응답에 당황하였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사회가 무엇에 가장 먼저 초점을 두어야하는지를 시사 하는 응답이기도 했다.

이재분(2014)이 소개한 2011년 R. Florida가 주도한 국제 비교 연구에서, 조사국가 82개국 가운데 한국의 창의성 수준은 종합 27위였다고 했다. 구체적 항목별 수준을 보면, 과학기술 8위, 창의인재 24위, 사회적 관용 62위였다(자료: Martin Prosperity Institute, 2011). 김청택(2014)도 토론토 대와 코넬대 연구를 인용하여 77개국 중 한국의 국가 다양성 지수는 62위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우리사회가 아직도 창의성에 관용적인 사회가 아님을 말해준다.

창의성에 관용적이라는 것이 무조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책임이 따르는 개성의 표현과 이에 대한 관용을 의미한다. 즉 ‘인간과의 관계’, ‘한 개인의 경험과 역사성’, ‘인간 존엄성’, ‘생명에 대한 존엄성’, ‘개성의 존중’, ‘사회의 보편적 선(social goodness)에 대한 지향’ 등 인간에 대한 기본 가치를 바탕으로 한 개성의 표현과 존중을 통해 창의적인 문화는 조성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교와 집단주의 전통 문화 속에는 이미 ‘인간관계의 존중’,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 ‘사회의 보편적 선에 대한 지향’ 등 많은 인간에 대한 가치가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통적 가치는 살리면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한국적인 창의성 문화를 정착하고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성은현 호서대학교 인문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프로필
성은현교수_1 성은현 (호서대학교 인문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프랑스 파리 5대학교 인지발달교육심리 전공 문학박사
한국창의력 교육학회 회장, 한국영재교육학회 수석부회장
호서대학교 인문대학 유아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