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문화의 만남]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문학작품

레프 톨스토이는 러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같은 작품들은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아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들에서 현대의 뇌과학이 생물학적으로 입증한 여러 사실들을 문학적으로 예고한다. 뇌과학이란 것이 있지도 않던 시절에 이 대문호는 심리적인 ‘사람 읽기’를 통해 뇌과학과 동일한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 중의 한 가지인 도파민과 몰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여러분은 어쩌면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란 용어는 잘 모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파민이란 말은 간혹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파민은 가장 유명한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오늘날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다. 간단히 말해 ‘신경전달물질’이란 우리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하나의 ‘뉴런’(신경세포)에서 다른 뉴런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 뇌 속에는 60여 가지의 신경전달물질이 존재한다.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은 모두 얽히고 설켜 각성, 흥분, 고통, 피로, 우울, 짜증 등등 온갖 종류의 정신작용에 관여한다.


 


그럼 이 신경전달물질 중 가장 유명한 도파민이란 무엇인가.  도파민은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까만색 뇌세포 덩어리(까맣기 때문에 흑질(substantia nigra)이라 불린다)에서 분비되는 물질이다. 도파민은 ‘보상 신경전달물질’이라 불린다. 인간이 무언가를 달성하고 완수했을 때 뇌에서 분비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라톤을 해서 우승했을 때 힘은 들어도 깡충깡충 뛸 수 있는 것은 도파민 덕분이다. 신나게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뇌 속에서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래서 그 쾌감 때문에 게임을 중단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완수하거나 무언가의 완수를 기대하거나 무언가의 완수를 목표로 할 때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기쁜 느낌을 만끽하도록 한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도파민의 기능을 예견했다. 위키미디어


 


그러므로 도파민은 목표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몰입’(flow)과 직결된다. 몰입은 성공적인 임무의 완수를 위해 그 임무에 고도로 집중한 상태 및 그로 인한 고도의 쾌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몰입이란 뇌과학적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흘러넘치는 상태’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몰입 전문가로 알려진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도파민이 관여하고 있는 집중, 쾌감, 의욕, 창조성 등은 몰입 체험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라고 말한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묘사하는 주인공 레빈의 풀베기는 몰입 전문가가 과학적으로 기술하는 상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이미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그 자체가 자기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요술에 걸리기라 도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30분 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 안나 카레리나 중 –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몰입 상태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째는 자아의 상실이다.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 있으면 자기가 어디 있는지 무얼 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여러분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무언가에 열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주인공이 풀베기에 열중할 때 우선 체험하는 것 역시 자아의 상실이다. 그는 열심히 풀베기를 하면서 ‘무아지경’을 더욱 더 많이 체험하게 된다. 몰입의 두 번째 특징은 시간의 상실이다. 몰입을 체험하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다. 재미있는 책을 읽다가(혹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밤을 꼴딱 새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몰입의 세 번째 특징은 어마어마한 행복감이다. 몰입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행복감 때문이다. 몰입에서 얻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경이다. 레빈이 풀베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더 큰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또 그는 더욱 더 풀베기에 몰입한다. 이 상태를 뇌과학적으로 풀어 말한다면 지금 레빈의 뇌 속에 있는 흑질에서는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레빈의 풀베기는 어찌보면 대수롭지 않은 행위이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단순 노동 조차도 몰입할 경우 엄청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몰입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몰입 대상이 건강하고 건전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에 몰입한다는 것은 공부하는 주체에게 엄청난 기쁨을 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보상이 된다. 그러나 게임에 몰입한다면 그것은 쾌감은 줄망정 진정한 보상이 없는, 오히려 몰입 주체를 망치는 일종의 중독이 된다.


 


톨스토이가 예견한 도파민의 기능은 “문학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새삼 상기시킨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과연 문학일까? 아름다운 시가 곧 문학일까? 아니다.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 보고서다. 위대한 작가들은 인간을 읽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찰과 관찰로 인간의 내면을 읽고 그 결과를 스토리로 남긴다. 톨스토이는 뇌과학도 도파민도 모르면서 도파민의 작용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정확한 소설을 썼다. 뇌과학자들 역시 인간을 읽는다. 단 그들은 생물학, 의학, 해부학을 넘나들며 CT, fMRI, EEG, MEG 등 첨단 장비를 통해 인간의 뇌를 샅샅이 스캔한다.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대문호들과 뇌과학자들은 ‘인간 읽기’라고 하는 지점에서 만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적 내용과 뇌과학적 사실들은 서로를 비춰주는 가운데 삶의 지혜를 드러내 보여준다.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