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이남숙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

 

– 이원수 작시 / 정세문 곡-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가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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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늦가을까지 시시각각 변화함으로써 우리의 눈길을 끌던 낙엽활엽수들은 겨울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나뭇가지 위로 눈꽃이 피어날 때를 제외하면 시선 밖에 있다. 그러나 이 동요를 작곡한 정세문 선생은 겨울철 나무를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던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이 곡을 지었다고 한다. 나무로서 겨울나무는 생명의 영속성을 갖기 위한 중요한 형태이다. 겨울이면 더욱 멋진 하얀 살결을 드러내는 자작나무를 통해 나무껍질(bark)과 어린 생명체를 숨기고 있는 겨울눈(winter bud)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울러 곧 다가올 성탄절을 맞아 크리스마스트리로 이용되는 구상나무는 왜 원뿔형인지, 그리고 어떻게 늘 푸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나무에도 몸매가 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느라 들썩인다. 이 때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나무의 형태가 아름답고 잎 끝이 날카롭지 않은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이다.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와 잎 등이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외부형태를 수형(tree type)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마다 몸매가 다르듯이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릴 때의 몸매가 크면서 변할 수 있듯이 같은 나무라도 수령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구상나무나 전나무와 낙우송 같은 침엽수의 수형은 원뿔형이다. 그런가 하면 느티나무, 벚나무, 단풍나무와 같은 대부분의 활엽수의 수형은 구형에 가깝다.

크리스마스트리용 구상나무는 왜 원뿔형일까?

우리들의 뚱뚱한 몸이 비만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듯이 나무의 수형도 식물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구상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 등 대부분의 침엽수들이 원뿔형이 되는 이유는 식물의 생장호르몬과 관련이 있다. 즉, 줄기 위쪽 끝눈(정아)에서 옥신(auxin)을 생산하여 끝가지가 빨리 자라는 정단우세현상이 있다. 반면 옥신의 농도가 높은 끝 부분에서 가까운 곁가지는 생장이 느리다. 정단에서 멀리 떨어진 아래 쪽 곁가지에서는 오옥신의 농도가 점점 낮아져서 생장저해를 덜 받아 위쪽 곁가지 보다 잘 자라게 되므로 맨 위가 좁고 아래로 갈수록 점차 넓어지는 원뿔형의 수형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용으로 만들든, 그림으로 그리든, 위는 뾰족하게 하여 그 위에 별을 달기 일쑤고, 위쪽 나뭇가지는 짧게, 아래쪽 나뭇가지는 점점 길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의 수형은 유전적으로 고정되어 있긴 해도 너무 밀집된 환경에서 자라면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하여 위로 빨리 자라서 긴 원추형이 되는 등 서식환경에 적응하여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원추형의 수형은 침엽수들이 주로 눈이 많은 추운 곳에 자라므로 눈이 많이 쌓이지 않도록 적응한 전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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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어떻게 추위를 견디는가?

사람도 추운 곳에서 살아온 사람과 더운 곳에서 살아온 사람은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다르다. 구상나무는 원래 추운 곳에 자라던 식물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이 높은 서늘한 곳에 잘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도 기온이 떨어지면 낙엽활엽수들이 매년 가을 잎을 떨구어 겨울을 준비하듯이, 구상나무도 다른 상록수들처럼 나름대로 추운 겨울을 버텨낼 준비를 한다. 비록 낙엽활엽수는 아니지만 구상나무도 오래된 바늘잎을 떨구고 봄에 잎이 새로 나기 때문에 겨울에도 늘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침엽수이다. 구상나무의 바늘잎 표면은 왁스로 덮여 있으며, 겨울이 되면 바늘잎의 세포 안에 아미노산과 당분 등 여러 물질이 많아짐으로써 세포질의 용질농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빙점이 낮아져 세포가 얼지 않게 함으로써 추위를 견디는 것이다.

자작나무껍질은 아낙네의 살결보다 더 희다?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흰색이며, 옆으로 벗겨지는 특징이 있다. 이를 보고 정비석의 수필 <산정무한>에서는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더 흰 자작나무껍질’이라고 표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구절이다. 뿐만 아니라 자작나무는 영화 ‘닥터지바고“에 등장하는 시베리아 숲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에는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전나무 숲이 좋았었는데 세월이 지나서인지 지난여름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함께 달리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자작나무숲이 더 좋아졌다. 흔히 말하는 나무껍질(수피, bark)란 나무줄기에서 물관부와 체관부를 만드는 ‘형성층’보다 바깥쪽의 체관부(phloem)와 주피(periderm)를 말한다. 수피 중 주피는 코르크피층, 코르크형성층, 코르크층으로 구성된다. 수피에는 체내외의 통기작용을 하는 피목(lenticel)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 피목의 형태와 배열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특정 무늬를 만든다.

나무줄기가 굵어짐에 따라 수피는 당겨져 파괴되어 점차 바깥 둘레로부터 벗겨져 떨어진다. 수피가 벗겨지는 방향이나 두께도 종류에 따라 다르고, 코르크층의 두께, 넓이, 피목의 모양과 배열 등과도 관계가 많다. 이 때 자작나무 수피처럼 축을 둘러싸는 상태로 점차적으로 형성된 주피가 윤상으로 벗겨지는 윤상수피(환상수피, ring bark)와 버즘나무와 모과나무 수피처럼 주피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표면부를 완전 둘러싸지 못하고 비늘모양으로 벗겨지는 인상수피(인피, scale bark)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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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는 코르크, 섬유, 수지(resin), 고무, 타닌 및 기타 함유 성분의 이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일상생활에 이용된다. 와인 마개를 만드는 코르크는 포루투칼과 스페인이나 이태리 남부에 자라는 코르크참나무에서 생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너와집을 만드는데 소나무, 전나무와, 굴참나무 수피를 이용해 왔다. 자작나무껍질은 백화피라는 한약재로 쓰이며, 팔만대장경과 천마총에도 사용되었고, 방부제가 성분이 있어서 시체를 싸는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겨울잠 자는 겨울눈

외부 형태적으로 낙엽수는 비늘이나 털로 덮인 겨울눈(동아, winter bud)로 살아가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겨울눈이란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생겨 겨울을 넘기고 그 이듬해 봄에 자라는 싹이다. 즉, 겨울눈 속에는 잎이나 꽃이 될 것이 들어 있고 그 겉을 비늘잎이 여러 겹으로 기왓장처럼 싸고 있어 속을 보호한다. 식물의 종류에 따라 겨울눈은 목련처럼 비늘잎에 솜털로 덮여 있거나, 치자나무와 같이 밀랍이 있거나, 또는 소나무처럼 끈끈한 진액으로 싸여 있다. 그러나 상록수는 비늘조각과 털 같은 것에 싸여 있지 않은 눈(나아, naked bud)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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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은 줄기에 붙는 위치에 따라 끝눈(정아, terminal bud), 곁눈(측아, lateral bud, 또는 겨드랑이눈(액아, axillary bud)), 그리고 정아와 측아가 생기는 이외의 부위에서 생기는 막눈(부정아, adventitious bud)로 구분된다. 또한 어떤 기관으로 발달하느냐에 따라 잎으로 발달하는 잎눈(leaf bud), 꽃으로 발달하는 꽃눈(flower bud), 잎과 꽃 모두를 발달시키는 혼합눈(mixed bud)로 구분된다.

추운 겨울동안 곰이나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듯이 나무의 겨울눈도 싹트지 않고 얼마 동안 겨울잠을 잔다. 이것을 휴면이라고 하며, 그 기간은 나무마다 다르다. 내부적으로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의 세포들은 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당분을 많이 만들어 놓음으로써 휴면하는 동안 겨울눈의 세포 속에서 물이 얼지 않는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물이 세포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겨울눈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사는 곳도, 특성도 서로 다른 구상나무와 자작나무를 생각하며 한 자리에서 묵묵히 각자의 처지에 맞게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식물의 ‘순응’을 배우며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싶다.

 

이남숙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프로필
LNS-1 이남숙 (李南淑, Lee, Nam Sook)
(1988-2014 현재 :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대학원 에코과학부 교수 )
2012-2014현재 : 한국난협회 회장.
2013.-2014현재 : 난문화협동조합 이사장.
『녹색우주』Green Universe, Stephen Blackmore 저, 이남숙 감수, 김지현 역, 교학사 2014.09 발행
『화분』Rob Kesseler & Madeline Harley 저, 이남숙 감수, 엄상미 역, 교학사 2014. 10 발행
『종자』Rob Kesseler & Wolfgang Stuppy 저, 이남숙 감수, 엄상미 외 역, 교학사 2014. 10 발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