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보다 강하고 비단보다 아름다운 나일론





[기초과학분야 20세기 이후 10대 사건 5]

강철보다 강하고 비단보다 아름다운 나일론




우리말 큰사전에 당당히 올라 있는 낱말 중에 ‘나이롱 환자’라는 말이 있다. 나이롱 신사, 나이롱뽕이란 말도 있듯이, 지금은 뭔가 좋지 않거나 가짜인 것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지만 원래 나이롱은 근사하고 좋은 것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너무 좋은 것을 가리키다보니, 좋은 것이 지나쳐 겉은 혹하도록 좋은데 속이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 강해지면서 의미의 변천을 겪은 것이 아닐까? 여하튼 나이롱은 그 정도로 튼튼하고 질긴데다가 광택이 나고 빛깔도 매혹적이다.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데, 잘생기고 성격도 좋으니 다른 섬유들이 샘을 낼 만도 하다.


 



인조비단이 탄생하기까지






그림 1 비단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위)와 이를 이용해 실을 뽑는 기계(아래). 사진 제공 : SXC
이 세상의 모든 물질들을 계속해서 작게 쪼개다보면 어떻게 될까? 계속 쪼갤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작은 부분까지 쪼갤 수 있을까? 만일 어느 순간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면, 그 부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후 1845년, 독일의 화학자 크리스티안 쇤바인(Cristian Friedrich Schonbein, 1799~1868)이 세계 최초로 인조비단, 즉 니트로셀룰로스(nitrocellulose)를 발명했다. 이 물질을 이용해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으니, 지금은 모든 과학자의 선망이 된 노벨상을 제정하게 도와준 대박 상품이기도 하다.






그림 2 레이온으로 만든 블라우스를 확대한 모습. 사진 제공 : 위키피디아


1885년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샤르도네 일레르 베르니고 백작(Louis-Marie-Hilarie Bernigaud, Comte de Chardonnet, 1839~1924))이 인조비단 제조법으로 특허를 받아 1891년 파리박람회에 출품,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만든 인조비단은 빛과 같은 광택이 난다 해 ‘레이온’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캐러더스, 나일론을 개발하다 

이렇게 의도적인 노력에 의해 개발된 레이온과 달리, 나일론은 원래 순수과학을 하는 중에 발명돼 그 어느 제품보다도 더 큰 대박상품이 된 합성섬유다. 비단이나 레이온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인류의 합성섬유 1호인 나일론은 미국의 유기화학자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에 의해 발명됐다. 이 발명품은 캐러더스가 고분자설을 학문적으로 증명하고자 집념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고분자량의 중합체(분자가 기본 단위의 반복으로 이뤄진 화합물)는 당시로서는 과학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상한 개념이었다.






그림 3 미국의 하이야트는 니트로셀룰로스로 당구공을 만들었다. 사진 제공 : SXC
이것은 마치 ‘지구는 우주의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천체는 지구의 돌레를 돈다‘는 천동설에서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로 변화할 때처럼 화학계에서는 큰 변혁이었다. 당시에는 분자가 그렇게 클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고, 작은 분자가 모여서 뭉친 2차결합의 집합체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26년 독일의 화학자 스타우딩거(Hermann Staudinger)가 일반적인 유기화합물(탄소가 주성분인 탄소 화합물)과 같은 공유결합(한 쌍의 전자를 두 원자가 함께 공유해 이뤄지는 화학 결합)으로 거대한 분자가 가능하다는 고분자 가설을 발표했을 때, 전 세계의 과학자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실제 산업적으로는 고분자량의 중합체가 일찍부터 사용돼 왔다. 1868년 미국의 하이야트(John Wesley Hyatt)가 니트로셀룰로스로 당구공을 만들었고, 1907년에는 베이크랜드(Leo Hendrik Baekeland)가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를 만들어 전기기구, 부엌용품 등을 생산했다. 캐러더스는 스타우딩거의 고분자설을 이해하고 믿는 극소수의 화학자 중 한명이었다.






그림 4 듀폰사에서 나일론을 개발한 캐러더스. 사진 제공 : 듀폰사
캐러더스는 1896년 4월 27일, 미국 아이오와주 버링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상업부기학교를 졸업하고 화학 전임교수가 한명도 없는 미주리주의 타키오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 화학 강사로 온 파디(Arthur Pardee)는 화학과 물리에 모두 능통한 실력파로, 캐러더스의 인생을 결정지을 화학의 기초를 가르치게 된다. 그 결과 학부생이었던 캐러더스는 파디의 지도로 화학을 강의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에는 당시 미국 화학계에서 떠오르던 일리노이대학의 애덤스(Roger Adams)와 마블(Carl Marvel)의 대학원생이 된다. 캐러더스는 이 당시에도 별명이 ‘박사’일 만큼 재능이 뛰어났으며, 학생이면서 미국 최고 권위의 미국화학회지에 단독 저자로 중요 논문을 두 편이나 게제하게 된다. 1924년, 그의 나이 28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의 강사가 됐다가 2년 뒤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초빙됐다.

이때 캐러더스를 눈여겨보고 있던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의 화학자 스타인(Charles M. A. Stine)이 그를 신물질 개발 연구원으로 초빙하려고 애썼다. 스타인은 훌륭한 화학자로, 특히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듀폰에서 돈이 되는 연구를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순수과학을 연구함으로써 장기적인 기업의 이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출퇴근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연구 주제도 제한을 두지 않으며, 연구비도 거의 제한이 없다는 조건을 확인하고 난 후 캐러더스는 교수에서 듀폰사 연구원으로 어려운 이직을 결행하게 된다.

당시 세계 화학계에서는 중합체의 고분자량이 화두였다. 거의 대부분의 화학자는 중합체에서 고분자량이 측정되는 것은 작은 분자들 사이에 수소결합과 같은 신비한 2차결합력 때문으로 믿고 있었지만 캐러더스는 자신의 경험과 직관으로 작은 분자내의 공유결합과 같은 결합으로 그런 고분자량의 중합체가 된다고 믿었다.








그림 5 나일론의 합성 과정과 응용 분야.



듀폰사 연구원이 된 캐러더스는 스타우딩거가 말한 진정한 고분자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돈이 되는 응용연구를 싫어했던 캐러더스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결국 가장 큰 돈이 되는 신물질을 개발하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캐러더스는 알콜과 산의 결합반응을 이용하기로 했다. 알콜과 산을 반응시키면 물이 빠지면서 에스테르 결합이 생성되는 것을 응용해, 분자 양쪽에 알콜기와 산기를 도입하면 유기화학적으로 긴 사슬이 될 것이었다.

드디어 1929년, 분자량이 5,000이 넘는 폴리에스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유기화학적인 공유결합으로 초고분자량이 만들어진다고 믿은 캐러더스는 분자량 6,000 이상의 폴리에스터를 만들 수 없음에 낙심했다. 하지만 유기화학적으로 생각한 캐러더스에게 떠오른 돌파구는 바로 물을 제 때에 강력하게 빼 주는 것이었다.






그림 6 나일론-6과 나일론-66의 화학 구조 모형. 사진 제공 : 위키피디아
1930년, 드디어 분자량 만(10,000)이 넘는 폴리에스터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캐러더스는 이런 고분자를 ‘초고분자’라고 불렀다. 캐러더스 연구실에서 일하던 멤버들은 자신들이 만든 폴리에스터로 장난을 치고 놀았다. 끈적거리는 고분자 덩어리에 유리막대를 찍어 잡아 뽑으면 가는 실이 뽑혀 나오는데, 누가 더 긴 실을 끊어지지 않게 뽑는가 하는 시합이었다. 이 시합으로 인해 연구원들이 복도로 실을 뽑으며 달리는 난장판이 자주 벌어지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신물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 고분자는 열에 약해, 여기서 뽑은 실로는 옷감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림 7 캐러더스팀이 개발한 폴리에틸렌텔레프탈레이트(PET)는 페트병을 만들 때 사용된다. 사진 제공 : 동아일보

스타인이 승진하고 그 후임으로 온 볼튼(Elmer K. Bolton)은 상업적 제조를 위한 응용연구를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캐러더스에게 그 후속 연구를 부탁한다. 캐러더스는 또 다른 반응을 이용하기로 했다. 산과 아민의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는 폴리아미드는 폴리에스터보다 더 견고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34년 폴리아미드가 만들어졌다. 이 실은 열에 강해 다림질도 가능했다. 나일론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1935년, 여러 후보 물질 중에 6-6이라는 비밀명으로 불리던 나일론-66이 발명됐다.

그 사이에 캐러더스 팀은 네오프렌과 폴리에틸렌텔레프탈레이트(PET, polyethyleneterephthalate)도 만들어 내었다. 네오프렌은 주요 합성고무로 지금도 널리 쓰이며 PET는 지금 음료수병으로 사용하는 페트병이다. 이 물질들은 당시 다크론, 마일라의 상품명으로 전세계 상품계를 휩쓸었고 듀폰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주었다.
이렇듯 캐러더스가 일하던 불과 8년 동안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분자들이 듀폰의 이름 아래 태어났다.


 



성공의 이면, 우울증으로 고통 받던 캐러더스


그러나 그는 이런 성공의 여정에서 늘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자살의 충동을 느끼며 고통 받았다. 맹독성 화학물질인 청산가리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정신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대단한 명성과 영예가 쏟아지던 1937년, 사랑하는 동생 이사벨이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몇 달 후 자신의 생일 다음날,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서 갖고 다니던 청산가리를 마시고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동료들과 조수들이 속속 노벨상을 받았으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분자화학자인 캐러더스는 정작 그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에게만 준다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을지 모를 일이다.


 


칫솔,스타킹… 나일론의 발달






그림 8 나일론으로 만든 두 번째 제품인 스타킹. 1940년 출시 당시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사진 제공 : 듀폰사

나일론은 원래 지방족 폴리아미드의 듀폰사 상품명이었지만 현재는 보통명사로 쓰인다. 듀폰은 나일론으로 처음엔 칫솔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수입하던 돼지털을 대체해 큰 돈을 벌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두 번째 제품은 스타킹이었다. 당시 여자들은 비단이나 면으로 만든 헐렁한 스타킹을 신었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은 우선 투명해 다리를 예쁘게 보이도록 해 주었고, 탄력이 있어서 쭈글쭈글해 지지 않았다. 나일론 스타킹을 발매하기로 한 1940년 5월 15일은 새벽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가 개장하자마자 스타킹을 구매해, 500만 켤레가 하루 만에 매진되는 역사적인 날로 세계적인 기사거리가 됐다.

나일론은 강도와 내마모성이 좋아 기계 부품으로 널리 쓰이며, 기체 차단성도 좋아 식품포장용으로도 중요한 재료가 된다. 특히 연신 섬유는 그 강도가 매우 뛰어나 각종 산업용 로프, 낙하산, 천막지 등으로 사용된다.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이 부족한 낙하산 재료를 충당하기 위해 여성들이 스타킹을 국가에 바치기도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그렇게 갑자기 많은 수의 낙하산을 제조할 수 없으리란 독일의 예측을 깨트린, 미국 여성의 승리란 말도 있다.


 


기초과학, 인류 발전의 토대

나일론은 기초과학 연구가 실제로 미래에 막대한 부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산물이다.

하지만 당장 직접적인 경제효과 만을 강조하는 현재 기업들의 분위기 속에서, 캐러더스처럼 누군가 한 회사, 아니 한 나라의 경제를 엄청나게 팽창시킬 정도의 블루오션을 창조하는 업적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일론과 캐러더스는 그 자체가 고분자화학의 역사요, 인류 발전의 토대이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화학의 역사이다.






[교육팁]
나일론은 고분자 물질로 합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분자 물질이란 무엇일까?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고분자 물질인 ‘탱탱볼’을 직접 만들어 보면, 고분자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문방구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풀과 소독용 붕사(약국에서 구이), 유리컵 2개와 긴 막대를 준비한다. 컵 하나에 물을 따르고 붕사 2숟가락을 넣어 녹인다. 다른 컵에는 풀을 짜서 모은 후, 붕사를 녹인 물을 넣으면서 막대로 계속 젓는다. 걸쭉하게 될 때까지 젓다가 하얀 고체 덩어리가 생기면 손으로 반죽을 하면서 둥글둥글하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탱탱볼을 바닥에 던지면,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문방구에서 파는 물풀은 폴리비닐알코올(PVA)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붕산수를 혼합하면 높은 탄성을 갖는 고분자 사슬구조의 물질이 만들어진다.

[교육 과정]
– 중학교 3학년 과학, 물질의 구성
– 중학교 3학년 과학, 물질의 변화에서의 규칙성

/ 전창림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 cjun@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