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 / Gattaca (1997년)

가타카 / Gattaca (1997년)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부분이 바로 스토리입니다. 물론 다른 요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영화의 줄거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결국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이라는 부분에서는 말 한마디 없더라도 영상이나 음악으로도 잘 전달 되어 오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는 사이언스 픽션 장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사이언스 픽션 장르는 타 영화 장르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을 기반으로 작가와 감독들이 상상해낸,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관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를 기반으로 한 사이언스 픽션 영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타 장르도 현재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 장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 가운데 하나는 역시 과학이라는 소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이나 물리와 생물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의 과학은 물론이고 사회 과학과 같은 문제를 실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결과가 있는 학문을 근거로 만들어낸 영화를 통칭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보면 학문보다는 흥미 위주로 풀어낸 영화들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 사이언스 픽션과 공상 과학과의 혼동이 유발된다고 봅니다. 물론 어느 한 쪽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즐기는 포인트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개념이 확립이 되어 있어야겠지요. 아무튼 제가 보는 사이언스 픽션 영화 장르의 큰 매력 중에 하나는 작가들이 상상해낸 세계에서 벌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나 감독의 상상(과학의 불확실성 때문에 모두 미래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의 세계는 반드시 관객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여야 한다.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관에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도 결국 허공으로의 외침 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 멋지기는 한데, 이해 못 할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뛰어다닌다.”라는 느낌만 받게 된다고 봅니다. 이는 사실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거기에 사이언스 픽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현실과 다른 책에서나 봄 직한 세계가 스크린에 구현됨으로 일반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타 장르보다 몇 배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만약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감정 이입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면 타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이와 감탄, 그리고 소재의 다양함을 선사하게 된다고 봅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이언스 픽션은 사실 가장 흥행 시키기 어려운 장르 가운데 하나이지만 성공하게 되면 가장 큰 파급력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안는데 성공한 ‘매트릭스’나 ‘인셉션’은 타 장르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이언스 픽션을 싫어하는 분들을 지적 능력이나 동향에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작가와 감독들은 관객을 끌어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좋아하니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이 정도로 잘 만들었는데 관객들이 어리석다는 말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인셉션’을 보고 이 정도도 이해 못 하니 너는 바보다라는 말보다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사람을 끌어안는 데는 실패했구나”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이언스 픽션팬들은 언제나 사이언스 픽션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은 다르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모두를 수용한 ‘아바타’는 놀라울 수 밖에 없고 또 \’인셉션\’의 결과도 사실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 리뷰를 쓰기 전에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가타카’에서 발생하는 화두를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아름다운 정통 사이언스 픽션

우리가 정통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칭하는 영화들을 보면 사실 과학적인 놀라움이나 볼거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현재 과학을 근거로 가능성 있는 세계관과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주선이나 광선총이 나와야 정통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주선이나 광선총이 등장하는 사이언스 픽션 영화는 정통 사이언스 픽션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더 가까운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에 비해 정통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더 주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런 경우, 과학과 인간관계가 더욱 부각이 되는데 결국 철학적인 범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너무 어렵거나 유치하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고 봅니다.

가타카는 유전 공학의 발달로 열성과 우성 인자로 인간이 판단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디스토피아에 대한 오해를 풀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는 데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래서 포스트 묵시록과 디스토피아가 혼동되는 것이지요. 디스토피아의 기본 개념은 겉으로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이지만 일부 계층 혹은 모두에게는 지옥과 같은 사회 질서가 표현되는 장르입니다. ‘가타카’도 디스토피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우성 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공이 보장된 세계이지만 열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차별이 있는 암울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열성 인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이지요. 바로 이런 장르를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일단 영화는 스타일과 영상 모두 사이언스 픽션 마니아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한 연출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과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열성 인자를 가진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하는 공감까지 이끌어 내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현실의 연장 선상

우선 영화는 인종 차별이 미래에도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피부색으로 혹은 인종으로 차별되던 것이 과학이 발달한 미래에는 유전자를 통해 차별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발달하건 부족한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차별이 과거나 미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학력으로 구분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를 보면 말이지요. 이와 같이 사이언스 픽션 영화들은 결국 과학의 이야기 이면서도 우리들의 단면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타카’는 세계관만 미래로 옮겼지 인간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질서들을 더욱 부각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공인 빈센트는 유전자 조작이 아닌 부모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남자입니다. 결점이 없을 수 없겠지요. 그리고 더구나 일반인보다 더 병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곳입니다. 열성 인자를 보유한 빈센트에게 자신의 꿈을 펼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꿈을 상실한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절망 가운데 살거나 질서에 순응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빈센트의 꿈은 잘못된 질서를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일 지라도요. 그러나 빈센트의 행동에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감독은 현재 사회질서에 대한 이야기를 사이언스 픽션을 사용하여 풀어가게 됨을 보게 됩니다. 자신보다 능력이 없고 게으른 사람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을 분명히 보신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혹은 회사의 이익에 의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게 되는 일도 있겠지요. 영화에서는 열성 유전자를 가진 빈센트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다만, 열성 유전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도 실력은 있지만,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 절망만 해야 할까요?

당신에게 꿈은 있는가?

감독은 사이언스 픽션을 사용하면서도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로만 볼 때 분명히 빈센트는 약하고 능력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이런 잣대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게는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수영할 때처럼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즉 죽을 각오로 이루어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즉 모티브가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보다 강한 유전인자를 가진 동생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는 것도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그만큼 소중한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점에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능력이나 배경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할 동기가 생기게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처럼 죽음을 각오한다면 가능하다고 보니 말이지요. 과학을 근거로 하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와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노력을 알리고 상대방에게 그 열정이 전달되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것 또한 보여주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제가 앤드류 니콜 감독을 높이 평가하고 또 그의 작품을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이언스와 인간관계를 이용하여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설정이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는 자에게는 하늘도 감동해 그의 소망을 이뤄준다는 거지요. 여러분도 죽을 만큼 힘들었던 때가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크게 낙담한 경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화같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정정당당하게 사력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인정받는, 그런 선례들이 많은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 독: 앤드류 니콜

스토리: 앤드류 니콜

출 연: 에단 호크, 우마 서먼, 주드 로, 앨런 아킨, 로렌 딘, 고어 비달,

         어네스트 보그나인, 블레어 언더우드

음 악: 마이클 니만

편 집: 리사 제노 커진

촬 영: 슬라워미어 이드지악

글_유상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