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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맛 이야기 ⑥ 조합과 이항정리: 골라먹는 맛

|이한기 기자

 

우리가 즐겨 먹는 카레는 걸쭉한 소스 형태지만, 카레의 할아버지뻘인 인도의 커리는 묽은 국물에 가깝다. 끈적한 커리, 카레의 고향은 일본이다. 19세기말 일본은 영국을 닮고자 했다. 영국 사람이 즐겨 먹던 커리도 들여왔다.

인도에서 커리란 카레처럼 특정한 소스가 아니라, 갖은 재료에 수많은 향신료를 섞어 만든 국물 있는 요리를 의미한다. 인도는 어느 나라보다 향신료 문화가 발달했다. 더운 기후에 향신료를 쓰지 않으면,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음식을 오래 먹기 위해 향신료를 썼지만, 인도사람들은 점점 향신료만의 독특한 맛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 이슬람의 음식문화까지 전해지면서, 인도는 ‘향신료의 천국’이 됐다. 오죽하면 영국이 인도를 침략한 이유가 ‘양념’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조합이 맛을 결정한다.

커리의 맛은 향신료를 어떻게 섞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향신료의 조합’이 커리 맛의 비결이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향신료를 섞어 만든 혼합양념을 ‘마실라’라고 부른다. 마실라는 정해진 형태가 없다. 원하는 향신료를 알아서 섞어 만들면 된다. 계피, 육두구, 정향, 강황, 후추, 소금, 고추…. 차마 이 글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인도의 향신료는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그 조합인 마실라의 종류도 셀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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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IB

수학에도 조합이 있다. 수학에서 조합이란 여러 개 가운데에서 몇 개를 순서에 관계없이 뽑는 경우를 뜻한다. 조합을 나타내는 기호는 C인데, 조합을 뜻하는 영어단어 ‘combination(콤비네이션)’의 약자다. 조합_img5은 서로 다른 n개에서 r 개를 순서에 상관없이 뽑는 가짓수를 말한다.

학교에서는 확률 단원에서 조합을 배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굴리면, 1에서 6까지 모두 여섯 가지 경우가 나온다. 이렇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수를 ‘경우의 수’라고 한다.

확률 계산은 경우의 수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주사위를 굴려 짝수가 나오는 경우의 수는 3가지(2,4,6)다. 따라서 주사위 게임에서 짝수가 나올 확률은 조합_img6, 즉 50%다. 주사위가 2개가 되면 어떨까? 이젠 손가락만으로는 벅차다. 도구가 필요하다.

조합과 이항정리는 경우의 수를 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다. 이항정리는 두 항의 합을 거듭제곱한 결과를 나타내는 공식이다. 예를 들어, (a+b)를 제곱하면 a2+2ab+b2이 나온다. 이항정리를 이용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a와 b가 하나씩 들어 있는 주머니 두 개를 떠올려 보자. a+b를 제곱한다는 건, 두 주머니에서 a와 b를 하나씩 뽑아서 곱한 뒤 더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a2은 두 주머니에서 모두 a를 뽑으면 된다. ab는 주머니 중 한 곳에서만 a를 꺼내는 경우다. b2은 b를 2개 꺼내는 경우지만, a를 0개 뽑는다고 생각해도 똑같다. 이항정리를 사용하면 다음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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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이용하면 복잡한 거듭제곱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가능한 a×b의 꼴을 모두 적어 놓고, 조합 공식으로 각 경우에 맞는 수를 구해 써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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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정리로 미래를 엿본다

이항정리로 아름다운 삼각형을 만들 수도 있다. 바로 파스칼의 삼각형이다. 파스칼의 삼각형은 이항계수조합_img9를 순서대로 늘어놓은 삼각형 꼴을 말한다. 단순하게 생겼지만 그 수학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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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수의 수열에서 피보나치의 수열까지 다양한 수열이 파스칼의 삼각형 속에 숨어 있다. 삼각형의 가로 방향의 합은 항상 2의 거듭제곱이다. 서로 다른 n개를 조합하는 모든 경우를 더하면 2n개라는 뜻이다. 삼각형의 대각선 방향의 합은 마지막 수의 반대 방향 아래에 있는 수와 같다. 짝수와 홀수 자리마다 서로 다른 색을 칠하면 신비로운 프랙털 무늬가 나타난다.

파스칼의 삼각형을 유리수 영역으로 확장하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확률이 정확히 조합_img10인 동전 던지기를 이항정리로 정리하면 종모양의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 단위를 조금만 맞춰 주면, 이 곡선은 통계학의 뿌리를 이루는 정규분포가 된다.

정규분포는 값이 평균 근처에 모여 있고, 평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대칭인 종 모양의 확률분포를 말한다. 정규분포를 보면 왜 세상에 중간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시험이든 0점이나 100점보단 60점이나 70점이 많다. 성적이 정규분포를 따르기 때문이다. 키와 몸무게에서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우리 주변의 많은 현상이 정규분포를 따른다. 여론조사를 할 때도 자료를 정규분포로 분석한다. 이항정리를 이해하면 앞날까지 내다 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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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파스칼. 출처 위키미디어

파스칼의 삼각형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파스칼이 처음 발견한 것 같지만 이항정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미 기원전 400년 무렵 그리스의 유클리드가 (a+b)2에 대한 이항정리를 언급한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100년 뒤 인도의 수학자 핑갈라는 더욱 높은 차수의 이항정리까지 풀어 놓았다.

경우의 수를 따질 때는 커리를

살다 보면 경우의 수를 따질 때가 많다. 물론 사람의 일은 수학 문제처럼 정확한 숫자로 확률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마음에 드는 선택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확률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만에 하나’, ‘십중팔구’ 같은 관용어도 따지고 보면 확률을 나타내는 말이다.

파스칼 이후 라프라스, 베르누이, 라크로아, 데데킨트 등 여러 수학자가 확률론을 발전시켰다. 20세기 들어 새롭게 등장한 물리 이론인 양자역학은 입자가 우주를 만드는 방식에 확률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원자핵 주위에 있는 전자의 위치는 확률적 분포로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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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IB

어쩌면 인생이 확률에 따라 흘러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조합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커리를 먹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