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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수학 ④ 금융 시장은 수학으로 돌아간다

|최영준 기자

 

커다란 전광판과 수십 대의 모니터 속에서 쉼없이 오르내리는 빨간색과 녹색 숫자. 그리고 그 화면을 분주히 확인하며 큰 소리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 보통 증권회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신 사나워 보이는 이런 곳에서 수학자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왜 생뚱맞게 증권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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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GIB

수학 덕분에 생긴 직업, ‘퀀트’

흔히 수학자라고 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칠판이나 종이에 어려운 식을 잔뜩 적어놓고 푸느라 골몰하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에 얼핏 안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수학자가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주식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매일 계산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매번 새로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수학자가 일하는 사무실 안에는 주식시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수십 대의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복잡한 수식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까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매일 증권회사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들을 ‘퀀트’라고 부른다. 퀀트는 ‘계량분석가(Quantitative Analyst)’를 뜻하는 영어의 줄임말로, 미국에서 증권가에 진출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지칭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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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는 매일 같이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출처 수학동아

퀀트가 금융계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금융 에 대해 뭘 알겠냐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한 수학 계산을 통해 이전 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내면서 금융회사들은 퀀트와 수학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숄즈 모형을 이용해 금융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파생상품이란, 주식이나 예금 같은 기초적인 금융상품을 이용해서 만든 새로운 상품을 말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주식 값이 정해진 기준을 넘었는지에 따라 정해 놓은 이자를 돌려 주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인 예다.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준 블랙-숄즈 모형

그런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런 금융파생상품을 대체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물건의 원가가 얼마인지 모르다 보니 활발하게 거래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73년에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수학자 피셔 블랙과 경제학 교수인 마이런 숄즈가 금융파생상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수학 공식을 발표하면서 거래에 물꼬가 트였다. 수학 공식 덕분에 금융회사는 팔 수 있는 상품이 많아졌고, 소비자는 고를 수 있는 상품이 많아진 것이다. 금융파생상품을 설계 하는 퀀트도 이 공식 덕분에 생긴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로로 숄즈는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모형에 기여한 로버트 머튼과 함께였다. 불행히도 블랙은 1995년에 세상을 떠나 상을 함께 받지는 못했다. 블랙-숄즈 모형은 주가의 움직임이 작은 입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브라운 법칙을 따른다는 착안에서 유래했다. 여기서부터 ‘금융공학’이라는 분야가 출발했다. 금융공학자들은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여러 가지 변수를 찾아서 연구한다. 변수는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이 변수를 연구해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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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IB

수학으로 금융파생상품을 만드는 비법!

실제 상품을 단순화해서 금융파생상품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40원이던 주식 값이 1년 뒤에 2배로 오르면 30원의 이익금을 주고, 주식 값이 떨어져도 손해를 보지 않는 상품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상품은 어떻게 구성하고, 또 얼마에 팔아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40원짜리 주식 하나로 상품을 구성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만약 1년 뒤에 주식 값이 떨어지면 증권회사는 손해를 보게 된다. 주식 값이 떨어져도 소비자에게 원금을 돌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소비자는 물론 금융회사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상품을 설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1년 뒤 그 상품을 팔았을 때 남는 돈이 주식이 올랐을 때는 30원 이상, 주식이 떨어졌을 때는 적어도 0원이 돼야 한다.

이처럼 기본 원리는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단순히 주식과 대출만으로 상품을 설계하지 않을 뿐더러, 기본 가정인 금리나 주식 값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만약 금리가 변하거나 주식 값의 변동이 예상한 값보다 클 경우에는 은행에서 빌릴 돈과 사야 할 주식의 분량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증권회사에서 퀀트들이 매순간 정신없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바쁘게 계산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양날의 검

퀀트가 금융시장에서 하는 일은 금융파생상품 설계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는 각종 방정식을 이용해서 만든 주식투자 알고리즘을 최첨단 컴퓨터 기술과 접목한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라는 방법까지 만들었다. 오늘날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미국에서 지난해 주식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중요한 투자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트레이더들이 쉬지 않고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없도록 해주기 위해 생겨났다. 원래 목적도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비용을 절감하고 위험 요소를 줄이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윤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많이 쓴다. 문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교란이다. 예를 들어, 2010년 5월 6일에 다우지수를 몇 분만에 1000포인트 폭락시킨 ‘플래시 크래시’가 있다. 이 원인으로 자동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사용한 초단타 매매가 꼽힌다.

최근에는 퀀트가 금융상품과 금융기관의 위험 요소를 분석하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융기관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때도 수학이 꼭 필요하다. 점점 복잡해지는 금융계에서 수학의 역할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