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이언스 피디아 > 과학콘텐츠센터 > 과학문화

1722

[똑똑한 맛⑩] 아이가 채소를 싫어한다면~

10회 프랑스 미각교육

세계적으로 미각교육이 활발하다. 미각교육은 어린이들이 음식의 맛을 즐기게 해 주고, 편식을 줄이는 등 식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교육이다. 요리의 나라 프랑스에서 197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지금은 이탈리아, 일본, 영국,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역시 일부 지역에서 시범교육을 펼치고 있다. 과연 미각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얼마나 달라질까. 미각교육이 한창인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본문>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면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아를플레르 마을이 나온다. 필자가 간 곳은 이 마을의 앙드레지드 초등학교다. ‘좁은 문’을 쓴 그 소설가의 이름, 맞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60여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급식을 먹고 있었다. 프랑스라고 급식 현장이 다를 건 없었다. 음식으로 나온 라자냐는 유럽에서 맛보아서 그런지 역시 맛있었고, 과일도 신선했다.

미각_img1
좀비가 채소를 먹는다

점심을 먹고 미각교육이 곧 시작된다는 교실로 찾아갔다. 10여 명의 어린이들이 둘셋씩 짝을 지어 각각 받은 채소를 잘게 썰고 있었다. 오이, 호박, 브로콜리, 당근 등이다. 필자에게 낯설었던 것은 서양무였다. 한 입에 먹기 좋게 썰어놓은 채소를 각각 큰 사발에 붇더니 5m쯤 뒤에 있는 벽으로 물러섰다. 이제 선생님이 나설 차례다.

“이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채소를 먹어보세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채소 사발로 달려든다. 오이나 호박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서양무나 브로콜리 사발에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번에는 공포를 느끼는 감정으로 먹어보세요.”

채소를 공포스럽게 먹으라니? 역시 아이들은 창의적이다. 한 명이 어기적어기적 다리를 끌며 걸어온다. 얼굴 표정이며 손동작까지 영낙없는 좀비다. 좀비 흉내를 내며 걸어온 아이는 호박 사발에 쑥 손을 넣더니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채소 먹는 좀비다. 1시간가량 수업이 끝나자 인기 있는 채소인 오이나 호박은 이미 바닥이 났다. 가장 인기 없던 브로콜리도 아이들이 달라붙어 먹으면서 금새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수업 전만 해도 채소를 싫어한다고 말하던 아이들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미각_img2

수업에 참가한 마떼오 꼬르띠노(10) 군은 “집에선 바나나만 먹었는데 오늘 채소를 참 많이 먹었다”고 말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을 물으니 “피곤한 표정으로 먹을 때”라고 한다. 오늘 수업을 진행한 제니퍼 망기와 오렐리 비뇨롱 선생님은 “아이들이 채소를 손으로 만져보고 자연스럽게 먹어보면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오늘 수업의 목표”라며 흐믓해 했다. 연극을 끝낸 아이들은 큰 종이에 채소의 맛을 다양한 단어로 적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표현력과 언어도 함께 배우게 된다.

프랑스의 전통요리는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에 빠지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무조건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라고 하거나, 억지로 채소와 과일을 먹게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자연스럽게 전통 음식의 맛을 일깨워줄 수 없을까. 좋은 음식재료의 맛을 느끼게 해줄 수 없을까. 이런 고민으로 시작된 것이 미각교육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는데, 2010년부터는 학교 수업으로도 들어왔다.

미각_img3

프랑스에서는 지역 학교와 전국미각연합이라는 곳에서 함께 진행한다. 10주 동안 매주 한번씩 한시간 가량 수업을 받는다. 오늘처럼 연극을 하면서 평소에 싫어하던 채소를 먹어보거나, 인형극을 하면서 음식을 먹는다. 주별로 미각, 후각, 청각 등 오감을 활용해 음식을 먹어보고, 음식 재료와 양념까지 평가하는 시간도 있다. 앙드레지드 초등학교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에베르 급식국장은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게 하는데 미각교육이 효과가 좋다”고 말한다. 이 마을에서만 매년 250명의 어린이들이 미각교육을 받고 있다.

좋은 요리는 사랑이다

이번에는 전국미각연합의 회장인 실비 드라로슈씨를 만났다. 그녀는 파리 외곽에 살고 있는데, 텃밭에서 직접 채소나 과일을 키우고 있다. 미각교육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역시 텃밭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맛과 음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학교에서 요리수업을 했다. 드라로슈 회장은 재미있는데 정작 아이들은 지루해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흥미있어 할 만한 자료도 찾고 교수법도 알아보다가 미각교육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미각_img4

(실비 드라로슈 전국미각연합 회장)

드라로슈 회장에게 미각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었더니 무엇보다 편식이 줄어들고 음식이나 맛에 대한 어휘력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모가 미각교육에 적극적일수록 좋은 효과는 더 커진다. 드라로슈 회장은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음식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해 직접 요리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미각교육은 식습관만 바로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좋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스스로 만끽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마을에서 만난 에베르 급식국장은 치즈를 역사나 지리 수업에 활용하거나, 자신만의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는 수업도 있다고 알려줬다. 농부와 목축업자가 음식을 어떻게 생산하고, 음식물쓰레기가 환경을 얼마나 더럽히는지 배우게 되면 우리 사회가 음식을 통해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미각_img5

파리에서 가장 권위있는 요리학교인 페랑디요리학교의 대표 요리장인(모프)인 브누아 니콜라씨를 만나 ‘요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다. 그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재료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답해줬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행복을 묻는 질문에 현인은 ‘친구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바로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리라. 미각교육은 바로 이런 즐거움과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